홍우주는 제가 처음 경험하는 문화예술공동체입니다-김수영

인터뷰 날짜 : 2019.05.31

인터뷰 및 정리 : 나동혁

장소 : 홍우주 사무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평일엔 홍우주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문화예술노동자 김수영입니다. 예술노동자라는 표현은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작년까진 이런 생각을 못했어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에서 진행한 텀블벅의 리워드 스티커가 있는데 연필+우주선 모양에 예술노동자라고 적혀 있어요. 이걸 과연 내 노트북에 붙여도 될까 하는 생각에 그간 모셔두고만 있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매일 쓰고 있지 않으니 작가라고 하기는 뭐합니다. 올해부터는 홍우주에서 지역혁신청년활동가이자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니 예술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자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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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주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주로 서비스업을 했습니다. 미술학원, 까페, 도예공방 등 여기저기서 알바를 많이 했죠. 대학교 조교일이나 그림책 삽화, 그래픽 외주 작업도 했구요. 도서관 알바는 4년차입니다.”

회화과를 나온 것으로 아는데 회화과를 졸업하면 보통 어떤 진로를 선택하나요?

“졸업 이후에는 강사를 하든 자기가 차리든 학원에 많이 가요. 일반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업으로 작품을 그리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개인 작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외주 작업이나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제 주변에서는 공간기획, 공연기획하기도 하고 게임회사나 마케팅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반회사로 가는 경우에는 전공을 살릴 수 없으니 허탈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어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회사도 다양합니다. 일반사무직이라면 관련이 적겠지만 게임, 디자인, 그래픽 관련 회사는 그래도 조금은 전공과 관련이 있죠. 후자 쪽을 선택한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졸업 이후에 다시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하니까 힘들어해요. 졸업 전시까지 달렸는데 다시 다른 분야 학원 등록 하고 상담 받고 길게는 2년 가까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졸업 전에 취업준비를 시작한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취직에도 불리하죠.”

그런 경우에 취업 후 생활은 어때요?

“이제 신입이기 때문에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게임회사 같은 경우 노동 강도가 높은 편이나, 미대 졸업 치고 연봉이 높은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워낙 다들 미래를 불안해 하니까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온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정감도 있죠. 여기서 경력을 쌓아서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도 있고, 노동조건이나 대우가 더 나은 해외로 나가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 IT사업의 노동강도야 워낙 유명하니까요.”

수영 씨는 졸업할 즈음 어떤 고민을 했었나요?

“일단 졸업을 완료하자는 생각이었어요. 학교를 열심히 다닌 편이 아니었습니다. 밀린 학점을 채우고 졸업작품 준비하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게 2014년이니까 홍우주 만들어질 때쯤이겠네요. 학교 안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저학년 때 학교를 열심히 안 다녔어요. 당시 위계질서가 너무 싫었습니다. 집단에 대한 순종을 필요 이상으로 강요했어요. 체육대회 같은 행사 준비에 알바같은 개인 사정으로 어쩌다 하루 못 나가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모욕을 줬습니다. ‘남들은 (자기 희생해서) 다 오는데 넌 왜 안 하냐’는 식인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단지 한 학년 어리다는 이유로 초면에 반말을 듣고 있으면 기가 차고요. 이런 예상 밖의 분위기 때문에 학교랑 멀어졌어요. 원래 폐쇄된 공간을 힘겨워 하는데 통학 거리가 멀어 러시아워 때마다 지하철 타는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가족에게마저 ‘다들 그렇게 사는데 넌 왜 못 하냐’는 말을 듣는 건 더 큰 고통이었구요. 졸업을 앞두면서는 닥친 일이 있으니 이런 것들에 꽤 무뎌졌었습니다.”

미투운동이 사회 전반을 강타했고, 예술계도 예외가 아니었잖아요?

“당시 미대 내 성폭력도 많이 회자되었어요. 대부분 개인이 피해사실을 공론화하면 주위에서 응원, 공감하는 방식으로 연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2010년대 초반보다 그런 움직임이 활성화되었죠. 용기 있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한 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강한 연대의식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