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가치와 공리주의>에서 이어지는 글

상황 1

앞선 글에서와 같이 자신이 해안구조대라는 상황이고 두 명의 사람이 해변의 양 끝에 빠져서 구조를 요청하는 동일한 상황이라고 하자. 이때 한 쪽에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 빠져있고, 다른 한 쪽에는 모르는 사람이 빠져 있다고 할 때, 자신의 가족을 구할 가능성이 50:50 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우선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수평적 공동체의 갈등 상황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후의 상황에 더해 좀 더 설명해 보겠다.

상황 2

똑같은 상황인데, 이번에도 한 쪽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빠져있는데, 다른 한편에는 국가적 영웅이고 현재 국가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빠져 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이 죽으면 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지는 반면, 그 사람이 살면 내 나라는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자.

이런 상황이라면 그래도 내 가족을 구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라의 운명을 위해 –이른바 대의– 자신의 가족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을 옳고 그르다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수직적 공동체의 갈등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결론

상황 2는 상황 1과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바로 상황 1에서는 갈등의 상황이 수평적이라는데 있고, 상황 2는 갈등의 상황이 수직적이라는데 있다. –물론 수평적, 수직적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가족과 타인의 가족은 동등한 가족으로서 수평적인 관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우선시 하는게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으며, 예컨대 전쟁과 같은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거의 내가 속한 나라의 편을 들도록 –물론 민간인 학살과 같은 정도가 넘어선 행위에 대해 적국의 편을 들 수도 있겠지만– 학습되어 왔다.

한편 내 가족과 내 나라의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이다. 내 가족은 내 나라에 속해 있으며, 내 나라는 보다 높은 층위에서 인류라는 공동체와 수직적인 관계를 갖는다. –더 높이 올라가면 인류는 생명이라는 공동체와 수직적인 관계를 갖는다.

이렇게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내 가족을 우선시 할 수도 있고, 좀 더 대의에 속하는 내 나라를 우선시 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일본에 의해 점령 당했을 때, 내 가족을 위해 일본에 협력한 사람도 있고, 내 나라를 위해 내 가족을 희생하며 일본과 맞서 싸운 사람들도 있다.

위와 같은 갈등 상황에서 좀 더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아무래도 외부의 다른 공동체와의 갈등 상황 속에서 공동체 내부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어려워 경쟁에서 지게 되므로, 일반적으로 더 큰 공동체를 우선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문화가 어느 나라를 가든 존재한다. 이른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영웅으로 추모하고 그런 사람들을 기리며, 따르도록 하는 이른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교육이 그러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수직적 갈등 상황에서 어느 쪽을 우선시 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는 공동체 자체의 존립이 위태롭기 때문에 공동체 자체가 도태되어 버리는 것이 이른바 사회의 질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