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그의 퍼포먼스는 계속된다 - 한받

인터뷰 날짜 : 2018.10.11

인터뷰 : 이현정 조합원

정리 : 나동혁 사무국장

홍우주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몇 년 전에 마포구청에서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없애려고 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때 저도 연락을 받았어요. 아직 홍우주가 설립되기 이전입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정상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술가들이 라운드테이블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 모임이 홍우주의 모태가 됐습니다. 홍대앞에 형성된 자생적인 문화예술생태계를 보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참에 지자체, 특히 서울시와 협의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조직을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홍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일원이면서 홍대앞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계속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관심과 근심을 갖고 함께했습니다. 긴 이름은 제가 제안했던 것인데 당시에 찬반양론이 아주 격렬했습니다. 반대 이유는 이름이 너무 가볍고 장난스럽다. 찬성 이유는 홍대앞 스타일에 어울리면서 뭔가 미래지향적이고 신선하다. 찬반토론 끝에 제안대로 결정되었습니다."

제안했을 때 본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장난스럽게 제안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름이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이름에서 조합의 색깔과 이미지가 묻어났으면 했습니다. 색다른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이었어요. 상상력을 홍대앞에만 한정하는 건 부족한 것 같아서 홍대앞에서부터 광활한 우주로 뻗어나가는 상상을 해보았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언제 이야기인가요?

"5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2013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파동성명학이라고 이름짓기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사람 이름이 그 사람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저희 아버지가 다른 사람 작명을 많이 했습니다. 집에 관련된 책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보고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아마츄어 증폭기나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활동명도 제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발음에도 신경 쓰는 거죠?

"그렇죠. 미세한 발음이나 철자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이름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 잡아냅니다. 이름에 따라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음악도 그 캐릭터 색깔을 고려하게 됩니다. 아마츄어 증폭기는 기타를 들고 잔잔하게 가끔은 과격하게 솔직한 심정을 노래한 포크 음악을 주로 했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전자음악으로 신나는 댄스를 주로 해요. 요즘 장르로 얘기하면 EDM인데 퍼포먼스가 두드러지는 공연이죠. 내용도 아마츄어 증폭기가 한 남자의 일상에서 비롯되는 솔직한 감정을 얘기한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나를 둘러싼 사회 현실과 모순,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로 해고 노동자, 철거민,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노래합니다. 돈만 아는 저질이 가장 대표적인 노래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스스로를 민중엔터테이너라 칭하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자기 자신도 민중의 일부라는 자각을 기반으로 노동자, 농민, 철거민, 장애인,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긴 노래와 퍼포먼스를 합니다. 공연 장소도 주로 거리에서 집회, 시위, 투쟁과 함께 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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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대변할 때는 공감이 먼저 되어야 할 거 같고 사람들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당사자성이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맞습니다.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공감을 못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 사회 모순이나 불합리한 점들을 많이 겪었죠. 음악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10년 가까이 일을 했어요.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오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 공감하면서 연대의식을 갖고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음악한다고 하면 보통 예술가라고 하는데 본인 정체성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2003년 당시 이대후문에 있었던 클럽빵에서 데뷔했어요. 그러다 저도, 클럽빵도 2004년에 홍대로 왔습니다. 그때부터 홍대앞에서 공연하고 음반을 내고 했지만 완전한 음악가라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하며 살았죠. 완전히 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한 거는 2010년 정도부터입니다. 최초에는 노동자의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런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