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남을 돕는 것이 나를 이롭게 한다.』

몇년 전 종영된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 박새로이가 운영하는 가게는 모든 컨디션이 괜찮았다. 장사의 기본인 음식의 맛,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인테리어, 친절한 주인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사채업을 하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주인공 박새로이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네 상권 자체가 죽었는데 잘 될 리가 없지’, 그 말을 들은 박새로이는 그때부터 동네의 다른 가게들을 돕는데 집중한다. 다른 가게들이 장사가 잘 되도록 조언을 해주고, 간판도 고쳐주고, 도울 수 있는 것은 다 돕는다. 보다 못한 자신의 가게 직원들이 ‘우리 가게 운영이나 신경 쓰지 다른데 신경 쓸 상황인가? 오지랖 그만 부려라’라고 불평하지만 박새로이가 일침을 날린다.

“이게 우리가 살길이다!”

지난 주말에 도봉산을 찾아 자운봉에 올랐다. 우연히 그곳에서 선배를 만났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평소에도 산을 좋아했던 선배는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여전히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얼굴은 꽤나 수척해 보였다. 선배가 늙은 것을 보니 ‘세월은 피할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고 하산하려는 나에게 선배가 식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혼자 왔던 터라 흔쾌히 수락하고 동행했다.

도봉산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들어서자 선배는 둘이서 먹기 힘들만큼 음식을 주문한다. ‘선배, 너무 많아요. 가볍게 주문하시죠.’라는 말에 한사코 괜찮다며 과하게 주문을 했다. 그리고 동동주도 한 사발 주문한다. 술을 하지 않는 나지만 잘 발효된 동동주 한 잔의 취기가 좋았다.

비즈니스 모임에서 처음 만났던 선배는 이제 막 58세가 되었는데, 2년 전에 퇴직을 했다. 선배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었고 직장도 다닌다고 한다. 좋아보였다. 선배는 소위 잘나갔던 사람이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의 재산도 있다. 불편할 것 없어 보이는 선배는 두어 시간동안 자신의 신세 한탄했다. 선배는 성공을 위해 참 독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퇴직하고 아내와 여행도 다니고 맛 집 기행도 했다고 한다. 몇 번하고 나니 재미도 없고 형수도 동행을 거부한다고 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산을 다니는데, 자주 산을 다니다보니 이제는 산악인이 다 되었단다. 연신 ‘오, 부러운데요.’를 연발하는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자네도 해봐라 이게 사람 할 짓이 못된다.’ 산에 오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서 3년을 하니 인생이 갑갑하다는 것이다. ‘산악회에 가입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죠.’라고 말했다. 선배는 내게 말꼬리를 흐렸다. ‘응, 그러면 되기는 하는데......’

더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선배의 살아온 과거를 아는 터라 미루어 짐작은 되었다. 선배가 잘 하는 것은 밀어붙이기였다. 그 안에 자신의 ‘꿈’은 있었지만, 타인의 자존감은 철저하게 배제 되었다. 그는 돈과 권력의 냄새를 잘 맡았다. 자신이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에게는 도구일 뿐이었다. 자신의 성공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했던 밟았던 사람이었다. 나와도 잠시는 친했었는데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자 바로 외면 모드였었다. 선배는 자신이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들조차 자신을 외면한다고 그들에 대한 서운함을 가득 내비쳤다. 바쁘다고 외면하는 그들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외로움에 대해서 한참을 토해했다. 무서운 것은 그 것이 잠시가 아닐 것 같다는 것이라고 했다. 헤어지고 집에 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선배가 은혜를 베풀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은 바빠서가 아니다. 거래관계가 끝났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고 교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공 앞에 인간관계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놓고 이야기 하던 사람이다. ‘인생은 독자생존이야. 그냥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그만인 거지 사람이 무슨 소용이냐.’고 훈계도 했었다.

혼자 살기에는 세상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빗대어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어떤 광고에서 그랬다. ‘빙하기가 오지 않는 한 우리는 100세를 살아내야 한다고.’ 운이 없으면 120세를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재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선배세대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과거에는 정년퇴직을 하고 1~20년을 살면 인생에 끝이 있었지만, 이제는 40년 이상의 시간을 더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년 이후에 40년을 내리 혼자서 등산만 해야 한다면 끔찍하다. 나는 그 긴 시간을 고립되어 살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전 뉴스에 고독사가 가장 많은 나이가 ‘40대’였다고 한다.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을 도와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세상이다. 우리가 서로를 돕기 위해 뭔가 대단한 것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더 가볍게 접근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성공을 돕지는 못해도 응원해주고, 타인이 성공했을 때 박수쳐주고, 타인에게 사랑을 주지는 못해도 미움을 주지는 말고, 내가 받은 상처를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폭탄 돌리기 하지 않고, 타인의 재물을 돕지는 못해도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 이런 것이 우리가 서로의 성공을 돕는 시작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마음의 공간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여전히 ‘배려’의 마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꼭 해보고 싶은 것 다 포기하고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배려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다 미뤄도, 다 포기해도 배려는 포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이미 만났고, 만나고 있다. 또 만날 것이다. 그저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타인의 인생을 그리고 마음을 돕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여전히 실수하며 살아가지만 배려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배려, 배려를 넘어 타인을 돕는 것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큰 지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빛나지 않을까?”

세무법인 청년들과 인연이 되는 고객분들이 모두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고객의 성공을 도울지 오늘도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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