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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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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시대

<aside> 🌹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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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상냥한 폭력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이 말이 '위선'이라는 단어를 정말 우아하게 표현했다고 느낀다. 예전에 만연했던 체벌이나 폭력이 없는 대신 요즘 사람들은 날카로운 말들을 상냥함이나 배려로 포장해 건넨다. 그래서 정이현 작가의 말처럼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어느새 칼날에 베여 있는 자신의 손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처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상처 받은 본인만 안다. 어떻게 보면 감정 폭력은 언론에서 자주 다루는 아동 학대, 성폭력, 살인 등 물리적 폭력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이런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상처 받은 본인의 과업으로 여겨진다. 정신과나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며, 그들은 자신으로부터 잘못을 찾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정작 정신과에 가야할 사람들은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군가 감정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거나 우울해하면 겉으로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마음이 여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폭력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나는 소심한 사람들이 싫어. 별 것 아닌 거에 상처 받고 그러더라고." "나는 장난이었는데. 너가 자존감이 낮아서 상처 받은 게 아닐까?"

이런 말들은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포장하고 상처 받은 사람을 소심한 사람으로 오도한다. 감정 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가해자의 잘못보다는 애초에 피해자가 나약하거나 소심하기 때문에 상처 받은 것이라는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도, 가해자도, 피해자 자신도 감정 폭력에 대해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책임의 화살이 모두 피해자에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