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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 수업이 재미가 없었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을까? 재미 없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일까?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사실 굉장히 흥미롭고 유용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어른이 되어서 다른 경로로 같은 내용을 배웠을 때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라며 놀라는 경험을 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면 무엇이 수업을 그렇게 지루하게 만들었을까? 『페다고지』는 이 평범한 질문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로 대답의 일면을 제시한다.


책은 총 4개의 큰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에서는 “억압받은 자들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억압”이란 무엇인지, “해방”이란 무엇인지, 억압받은자들을 위한 교육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교육인지에 대한 기초 개념을 정립한다.

해방과 억압에 대해 풀어쓰는 1장의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 맑스주의의 해설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단순히 맑스주의를 해설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맑스주의자들이 해방을 추구하는데 있어 자주 간과하는 부분들을 지적한다. 즉, 맑스주의자들은 종종 해방을 “뛰어난 해방자가 선량하고 무지한 민중들을 사악한 자본가로부터 ” 빼앗아오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하는데, 『페다고지』는 해방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이야말로 억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유라는 점을 지적한다.

<aside> 💡 그러나 거의 언제나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는 피억압자가 해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억압자나 ‘아류 억압자’가 되기 위해 애쓰기 마련이다. 그들의 사고구조는 그것을 낳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상황에 의해 제약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되는 것을 이념으로 삼지만, 그들에게 인간이 된다는 건 곧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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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혁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피억압자의 대다수는 — 옛 질서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 혁명을 자신의 개인적 혁명으로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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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하지만 이런 프락시스를 얻기 위해서는 피억압자를 신뢰하고 그들의 추론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이런 신뢰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대화, 성찰, 의사 전달을 시작 할 수 없게 되며(혹은 그 의무를 방기하게 되며) 구호, 성명, 일방적 대화, 지침만을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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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는 억압의 구체적인 형태로서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이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한다.

은행적금식교육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소름끼치게 우리의 학교교육을 묘사하고 있어, 이 책이 과연 반세기 전의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책에서는 은행적금식 교육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나열하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일방적인 교사의 능동성과 학생의 수동성에 대한 강조다. 즉, 은행적금식 교육에서 학생은 교육에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을 당하는 존재다.

<aside> 💡 교사는 현실에 관해 말하면서도 마치 현실이 고정적이고 정태적이며, 구획화되고, 예측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중략) 이 설명식 교육의 뚜렷한 특징은 변화시키는 힘이 아니라 말의 반향이다. “4곱하기 4는 16이고, 파라의 주도는 벨렘이다”학생은 이 문구를 받아 적고, 암기하고, 반복하지만, 4곱하기 4가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주도’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89p

개인은 구경꾼이지 창조자가 아니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인간이 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식의 일개 소유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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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대안인 문제제기식 교육은, 학생을 구경꾼이 아닌 창조자로, 교육을 당하는 존재가 아닌 교육에 참여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한다.

<aside> 💡 문제제기식 교육방법은 교사-학생의 행동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중략)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한 강의 청취자가 아니라,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비판적인 공동 탐구자가 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시하며, 학생들이 각자의 견해를 발표 할 때 예전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재고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자의 역할은 학생들과 함께 독사(doxa, 의견) 수준의 지식이 로고스(logos)수준의 참된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을 창출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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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시야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개인들은 더 이상 온순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개선하는데 참여 할 수 있는 용기와 역량을 얻게 된다. 즉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문제제기식 교육의 최종 목표인 인간화의 참 의미다.

<aside> 💡 참된 행동을 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결정된 것으로, 즉 고정불변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제한적인 것으로, 따라서 도전해 볼 만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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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과 2장이 문제의 제기와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3장과 4장은 그 실천의 구체적인 방법과 그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다룬다. 특히 이른바 “해방적 교육”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교육의 결과로 학생들을 해방시키지 않고 억압하게 되는지를 여러가지 실례를 들며 보여준다.

<aside> 💡 억압자는 민중에게 지금 그대로의 현실을 주입하고 그에 적응하도록 만든다. 불행히도 혁명 지도부 역시 혁명적 행동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은행적금식 기법의 덫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농민이나 도시 대중들에게 민중 자신의 세계관이 아닌 그들의 세계관에 일치하는 교육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중략) 민중을 끌어들인다는 말은 혁명 지도부의 어휘가 아니라 억압자의 어휘다.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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