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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결혼하기란 정말 어려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고, 심하게는 포기해야 하는지 아닌지가 변동되는 것들도 많았죠. 그런 와중에도 큰 물의나 갈등 없이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희가 결혼이라는 프로젝트를 지라를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지라를 통해 결혼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되었는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결혼은 사실 지라로 관리하기 딱 좋은 프로젝트

지라를 사용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티켓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티켓은 가급적 “미리 한 번에” 만들어서 모두 백로그로 만들어 놓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래야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해야 할 일”의 규모가 파악 될 수 있고, 그에 맞추어 일정을 산정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미리 한 번에” 티켓들을 만들어 놓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이슈(티켓)가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계획했던 일정에는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이죠.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 일정을 산정 할 때는 반드시 이런 변수가 있을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예측”하는 부분이 일정 산정 및 프로젝트 관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프로젝트에서는 바로 이런 “예측”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정말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체크리스트들에 있는 태스크들에서 해야 할 일이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기호에 따라 몇 가지를 추가하거나 생략하는 정도지요. 따라서 “최초에 만들어 둔 태스크들만 잘 관리”하면 나중에 “헛 뭐야 이것도 챙겨야 하는 거였어? 큰일났다 이제와서 이걸 어떻게 한다?” 같은 상황이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결혼은 “예측성”이라는 차원에서는 간단한 프로젝트이지만, “의존성”이라는 차원에서는 복잡한 프로젝트입니다. 예컨대 “포토테이블 세우기”, “웨딩촬영”, “턱시도 맞추기”, 반지 맞추기”, “청첩장 만들기”, “다이어트 하기” 등의 여러 태스크들은 얼핏 서로 독립적인 일 처럼 보이지만, 밀접한 의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포토테이블을 만들려면 사진이 있어야 하고, 사진을 찍으려면 턱시도를 맞춰야 하고, 턱시도를 맞추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결혼반지 맞추기는 대부분 독립적으로 진행 할 수 있지만 웨딩촬영 전까지는 완료되어야 하고요. 또 모바일 청첩장에도 웨딩촬영 사진이 사용되기 때문에 촬영은 청첩장을 만들기 전 까지 촬영 및 인화가 완료되어야 합니다.

즉 태스크들 사이에 선후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어떤 태스크들은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하는 Deadline이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일정을 짜야 합니다.

이런 의존성을 표시하고 시각화 하는데, 지라는 굉장히 탁월한 도구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저희가 결혼에 필요한 주요 태스크들을 몇 개의 에픽으로 나누고, 각 에픽의 관계를 “depend on” 등으로 표시한 뒤, 해당 내용을 Roadmap으로 확인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순서대로 해야 할 태스크들과 병렬로 진행 가능한 태스크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순서대로 해야 할 태스크들과 병렬로 진행 가능한 태스크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태스크들의 의존성을 잘 관리하면, “미리 걱정” 할 일이 없어집니다.

위 그림에서 표현되는 의존성은 얼핏 복잡해 보이고, 이런 의존성을 머리에 담고 있는 것이 힘들어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렇게 의존성이 명확하게 되면 한 번에 머리에 담아야 하는 정보는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예컨대 제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는 포토테이블이나 스튜디오 촬영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이어트가 끝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므로, 다이어트 기간에는 “오직” 다이어트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물론 바로 다음 에픽인 “양복맞추기” 정도는 머리에 넣고 있어야 겠지요 😁)

결혼준비를 하면서 다투는 커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원인 중 하나는 “조바심”이 아닐까 합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면서도 스튜디오 촬영과 포토테이블 걱정을 하게 되면, 걱정 자체가 많아질 뿐만 아니라,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자칫 정말로 뭔가 놓치기라도 하면 “내가 이것 신경 쓸 동안 당신은 왜 이런 것을 놓쳤냐”라면서 상대방 탓을 하게 되는게 결혼식 준비중 생기는 다툼의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지라를 통해 의존성을 한 눈에 확인하고, 특정 기간 내가 전념해야 할 것들이 파악되면 이런 조바심에서 해방 될 수 있고 훨씬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파트너와 계획을 논의 할 수 있습니다.

오너십을 나누면 걱정 거리가 줄어듭니다.

지라의 티켓에는 담당자라는 항목과 [협업자](<https://confluence.atlassian.com/servicedesk/collaborator-660967501.html>) 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결혼준비의 여러 태스크들은 부부가 함께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신랑신부 각자가 전담해야 하는 태스크들도 많습니다. 예컨대, 제가 양복을 맞추는 일은 제가 전담해야 하는 일이고, 부케를 고르는 일은 신부가 주도해야 하는 일이지요. 상견례 자리를 고르는 일은 한 쪽이 진행하되 서로 협업해야 하는 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