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아마도 악마가

2월 1일 이른 아침. 일련의 장갑차가 의사당을 향해 진격했다. 행정수도 네피도의 의사당 앞 거리에서 매일 같이 에어로빅댄스를 추고 영상을 업로드하던 Khing Hnin Wai라는 여성의 뒤로 여러 대의 장갑차들이 지나갔다. 이날 미얀마 연방회의(상원)는 2020년 11월 치뤄진 총선거 이후 처음 개회될 예정이었다.

오후까지만 해도 미얀마 현지 상황은 고요한 것처럼 보였다. 쿠데타가 이루어진 뒤 몇 시간 후 단절됐던 전화 통신망과 방송 네트워크는 서서이 복구되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전역의 금융 업무도 한동안 정지되었고, 이내 다시 복구됐다.

아웅산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과 윈 민(Win Myint) 대통령 등 고위급 인사들이 잇따라 체포됐다. (자연재해 관리법 위반과 무전기 6대를 불법으로 수입 혐의) 체포 당시 군부는 구체적인 혐의를 밝히지 않았다.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곧바로 아웅산수치 명의의 성명을 발표해 군부의 행동을 수용하지 말고 항쟁할 것을 호소했다.

수치 여사를 비롯한 NLD 상층이 군부에 의해 체포되자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신임 국무장관 블링컨은 “미국은 미얀마 국민들과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염원과 함께 한다”며, “미얀마 군은 반드시 즉각 쿠데타와 정치인사들에 대한 체포를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과 인도, 호주 등 정부들도 사태를 주시하고 읽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대표는 “미얀마의 각 세력이 헌법과 법률의 틀 내에서 이견을 선처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인도 외교부 역시 “법제와 민주적 프로세스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2일차 : 세상은 끝나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직접 성명을 냈다. 바이든은 “미얀마가 민주적 궤도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압박하기 위해 미얀마군 및 유관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국제사회는 마땅히 함께 한 목소리를 내고, 미얀마군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그들이 즉시 권력 탈취를 포기하고 억류된 활동가들과 관리들을 석방하고, 통신에 대한 모든 통제를 철회하며,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을 중단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먼라이츠워치를 비롯한 리버럴 성향의 NGO들도 바이든 행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촉구했다.

민 아웅 훌라이 참모총장이 이끌고 있는 군부는 1년 동안 국가통수권을 유지하겠다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가 끝난 후 선거를 치루어 새로 선출된 정당에 정권을 넘기겠다는 것이 군부가 밝힌 향후 플랜이다.

그날 밤 미얀마 군부는 중앙정부에 있던 24명의 장·차관을 해임하고, 국방부와 변경사무부, 계획부, 재정산업부, 투자및대외경제관계부, 국제협력부 등에서 11명의 관료들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시민들은 불복종 운동을 개시했다. 쿠데타 직후 저항이 군부의 강력 진압에 구실을 줄까 우려했던 시민들은 하나둘씩 거리로 나왔다. 둘째날 밤 양곤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소음 시위’는 이런 불복종 운동의 전초적 단계였다. 시민들은 테라스나 창문가, 혹은 거리로 나와 어떤 구호도 없이 냄비 등 물건을 들고 소리를 냈다. 거리를 지나가던 차량들도 경적 소리를 내며 이 행동에 동참했다. 이렇게 해서 시민들은 용기를 갖기 시작했고, 거리로 쏟아져나와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소음 저항’은 매일 저녁 8시 정각에 시작된다. 첫날 집 안에서 소음 시위를 벌였던 시민들은 이제 집 밖으로 나서서 냄비와 그릇을 두드린다. 1988년 민주항쟁 이래 대중운동이 폭발할 때마다 불리곤 했던 민중가요 “세상은 끝나지 않을 거야”(ကမ္ဘာမကြေဘူး)를 부르기도 한다.

새로운 역사를 쓸거예요, 할아버지!오~ 사랑할 줄 아는구려100 피트 도로 위에 청춘들이새로운 역사를 쓸거예요, 할아버지!온 국민이 용감하게 나섰어요, 아버지!

100 피트 도로 위에 청춘들절대 포기를 모르는 형제들이여형제들이여나라를 핍박하는 폭군들이 아직 남아있으니망설이지 말자민주화 운동에 앞장 선….우리의 영웅들 처럼굳건히 맞서 싸우자꾸나!

형제들이여나라를 핍박하는 폭군들이 아직 남아있으니망설이지 말자민주화 운동에 앞장 선… 우리의 영웅들 처럼굳건히 맞서 싸우자꾸나!

3일차 : 세 개의 손가락

시작은 병원이었다. 30여 개 도시 70여 개 병원에서 의료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의사와 간호사 등 노동자들은 빨간 리본을 달고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저항할 것을 표명했다. 영화 <헝거 게임>에서 저항자들의 표식으로 등장했던 ‘세 개의 손가락’은 2020년 태국 방콕 대중시위에서도 상징적 기표로 등장한 바 있다. 의료 노동자들의 저항은 확실히 전국 각지의 시민들을 자극했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불복종에 참여하는 직종과 지역이 늘어났다.

군부는 의료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현지 언론 프론티어미얀마가 전한 현지 의료 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양곤에서 일을 멈추지 않은 의료 노동자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