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기록을 영구히 저장하는 기술입니다. 안해룡 감독님은 평생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실을 드러내며 사셨던 할머니들의 삶을 기록한 분이고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을 잘 알기에 저희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기록은 때때로 영원히 보존될 필요가 있으니까요."

블록체인 개발 스타트업 시즌에스는 이달 아이폰 앱스토어를 시작으로 '위치위치' 앱을 출시할 예정이다. 사용자 위치와 관련된 각종 디지털 기록을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SNS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건 이들이 위치위치 기반으로 준비 중인 한 프로젝트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역사적 족적을 블록체인에 담아 보존하겠다는 것.

이민준 시즌에스 대표 (사진=시즌에스)

이민준 시즌에스 대표 (사진=시즌에스)

사용자들은 이달 말 안드로이드 버전이 출시되는 시점부터 위치위치 내 위안부 할머니들의 개별 프로필 공간에서 그들의 발자취를 둘러볼 수 있게 된다. 해당 기록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영구히 보존될 예정이다. 블록체인은 다수의 검증자를 거쳐 승인된 데이터만 기록하는 신뢰 기반의 데이터 저장 기술이며 특히 한번 기록된 기록은 지우거나 수정할 수 없어 데이터 보존에 특화된 기술이기도 하다.

위치위치 위안부 역사 기록 프로젝트에 자료를 제공한 안 감독은 1993년부터 30여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얼굴 및 수요시위(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집회) 사진 등을 기록해왔다. 그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에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의 기록도 다수 포함돼 있으며 역사적 가치 또한 높게 평가된다. 위안부 사건 폭로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생전 위안부 사건을 최초로 증언했던 기자회견, 일본군 대사관 앞 첫 번째 수요시위의 생생한 모습 등도 위치위치에 보존될 예정이다.

안해룡 감독이 기록한 다양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사진들 (자료=안해룡 감독)

안해룡 감독이 기록한 다양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사진들 (자료=안해룡 감독)

이는 그간 미디어를 통해 단편적으로만 전달되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여정이 디지털 공간에서 개개인의 역사로 재탄생되는 과정이다. 위안부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군인들의 성욕 해결을 목적으로 불법 징집한 조선, 중국, 필리핀 등의 여성 피해자들이다. 근현대사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범죄 중 하나로 꼽히지만 일본은 지금도 피해자들의 사과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나아가 사건 관련 자료도 축소·은폐하고 있으며 남은 피해자들은 하나둘 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더이상 증언대에 설 수 없게 된 그들의 족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록이 후일 피해자들의 고통을 후세까지 전달하는데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또 단체로서가 아니라 피해자 개인의 생각과 자취를 재구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일본의 위안부 성노예 범죄를 최초로 폭로한 고 김학순 할머니 (사진=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일본의 위안부 성노예 범죄를 최초로 폭로한 고 김학순 할머니 (사진=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이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 과정에서 콘텐츠 기록의 가치를 새롭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비록 개인의 작은 기록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특별한 시공간적 가치를 담은 콘텐츠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점을 보면서 깨달은 점이다. 특히 시간과 위치 정보를 활용하면 콘텐츠에 평범한 사진과 다른 입체감을 부여할 수 있다. 시즌에스도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위치위치 서비스 인터페이스를 대부분 지도 중심으로 설계했다. 사용자들은 특정 위치에 남겨진 다른 사용자들의 기록도 읽을 수 있지만 각 프로필 공간에 접속하면 그들의 과거 기록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나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즌에스는 위안부 역사 기록 프로젝트 이후 다양한 '마니아'들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 그들이 열정을 갖고 기록한 각종 자료들로 위치위치에 또 다른 디지털 전시관을 열 수 있도록 돕고 기록의 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는 장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전국의 양조장을 찾아 기록하는 '양조장 마니아', '수제 햄버거집 마니아' 등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들이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