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을 읽다 큰 영감을 받은 부분 메모.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생활에서도, 그 외의 모든 사회생활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신선한 글.


어떤 사람이 우리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을 일들에서 우리를 불쾌하게 했느냐, 아니면 우리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일들에서 우리를 불쾌하게 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서 엄청난 차이를 초래한다.

전자의 경우에 그 사람이 우리를 불쾌하게 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도 되고,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 행동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멀리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모든 벌을 이미 받고 있거나 앞으로 받게 될것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 사람의 삶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이미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의 잘못에 대해 의도적으로 응징을 가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그의 삶을 더욱더 망쳐놓는 것은 옳지 않다. 그를 응징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그 자신이 겪고 있는 해악들을 피하거나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이미 받고 있는 벌을 덜어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 동정, 아니 아마도 혐오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분노나 적개심의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그를 사회의 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에게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호의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에게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그 이상으로 무엇인가 응징을 가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반면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규범을 어긴 후자의 경우에는, 그의 그러한 행동은 완전히 다르게 취급된다. 그의 행동으로 인한 해로운 결과들이 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치기 때문이다. 사회는 자신의 모든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응징해야 하고, 명백한 징벌의 목적으로 그에게 고통을 가해야 하며, 그 징벌이 충분히 혹독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현대지성, p.18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