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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즈는 자율출퇴근제와 무제한 자율 휴가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팀을 3인 이하의 셀(Cell)로 쪼개 6주의 빌딩과 2주의 쿨 다운 사이클을 진행하고 셀에 해당 서비스 피처 및 운영 결정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자율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는 대신 핵심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썩은 사과 이론을 적용해 냉정하게 솎아냅니다. 누구도 명령하거나 비판 또는 가르치지 않으며 유일한 개입은 다면 평가와 스트라이크 제도를 통한 해고입니다.

애자일(Agile)을 적용한 기업문화인데요, 애자일은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후 SW 엔지니어들의 애자일 선언에서 시작한 운동입니다. 애자일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관점에선 인간은 본성적으로 일을 즐기고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원하며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금전적 보상보다 자아실현 욕구 등 고급 욕구의 충족을 통한 동기유발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전통적인 경영 철학인 ‘테일러리즘’에 반하는 것인데, 테일러리즘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노동을 싫어하고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일하며 노동자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으며 엄격한 통제, 위에서 아래로의 위계, 금전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산업화 시절엔 지금은 기계가 하는 반복적인 단순노무를 노동자가 했기 때문에 테일러리즘이 자연스레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노동자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이나 고급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기에 철저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노동의 시대로 1에서 2, 3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0에서 1을 창조해야 합니다. 내적인 동기를 통한 창의성이 발현되지 않는다면 치열한 4차 산업혁명에서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묘수는 위계질서에선 묻히기 십상이며 통제와 강제에선 발휘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억지로 일을 하게 되니까요.

또한 테일러리즘에선 워터폴 방식의 프로세스가 유효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며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기획, 리서치, 디자인, 개발, 테스트 등의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제했고 수많은 보고절차와 완벽주의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렇게 초기 인터넷 시장의 스타트업들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려는 것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고, 결국 닷컴 버블이 붕괴했습니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가 개막하고 엄청난 자본이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IT 스타트업이 쉽게 투자유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워터폴 방식대로 1-2년 동안 개발에 투자금을 소진하며 완벽한 론칭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인터넷 시장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성장하면서 그 사이 해당 서비스가 필요 없게 되어버립니다. 이런 실패가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닷컴 회사들이 실체가 없다는 공포에 시장은 무너져버렸죠.

애자일은 사전적 정의대로 작고 빠르게 실패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거창한 것을 기획하고 만들기보다 핵심만 담은 기능을 재빠르게 론칭해서 실제 고객 반응을 학습하는 사이클로 프로덕트를 진화시킵니다. ‘타고 다닐 것’이라는 목적을 가진 프로덕트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킥보드를 빠르게 만들어 고객을 학습하는 것입니다.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경쟁자들은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직관에서 비롯한 추측일 뿐이라 실제 고객에게 내보이기 전까진 절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고객 인터뷰나 설문지 따위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작고 빠르게 만들어 계획된 실패를 거듭하며 시장과 프로덕트의 핏(Product Market Fit)을 맞춰나가기 위한 How to를 애자일 방법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애자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애자일을 실현할 프레임워크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XP, 칸반, 스크럼 등 수많은 방법론들이 실리콘밸리를 휩쓸었는데 본질은 같습니다. 작고 빠르게 실패할 수 있는 방법론입니다. 비대해지는 조직을 작게 쪼개서 자율과 권한을 부여해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를 응원하며 학습해나갑니다.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핀란드 스타트업 수퍼셀은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데(1인당 매출 125억) 셀 단위로 조직을 쪼개서 실패해도 되니 아무 게임이나 만들어보라고 한 뒤 실패하면 파티를 열어준다고 합니다.

애자일 방법론은 애자일을 시도하는 회사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사업분야나 조직의 크기, 리더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와이어즈는 Basecamp라는 실리콘밸리 회사의 Shape Up 프레임워크를 차용했습니다. 리더들이 Shaping을 통해 개발할 피처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문서화(Pitch) 한 뒤 베팅 테이블에 올려서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리고 각 피치별로 걸리는 시간을 실무자와 협상한 후 3인 이하에 셀을 정해 피치를 분배합니다. 6주의 빌딩 동안 셀은 해당 피치를 만들고 배포할 권한을 갖습니다. 빌딩이 끝난 후 2주 동안 쿨 다운을 통해 미비된 일이나 하고 싶었던 일을 처리합니다. 리더들은 6주 동안 다음 빌딩을 위한 피치를 Shaping 하죠. 유의할 점은 리더는 6주 동안 어떠한 관여도 개입도 하지 않으며 Shaping도 너무 디테일하게 해서 실무자의 창의성을 가두면 안됩니다.

혹자는 대기업만큼 연봉이나 복지를 못 주니까 수평과 자유로 대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 대표와 리더들이 애자일의 껍데기만 따라 하시거나 실제로 인재 영입을 위해 수평과 자유를 강조하시기도 하고요. 그러면 보통은 수평과 자유를 표방한 독재가 펼쳐집니다. 팀원들은 차라리 수직적인 구조로 효율화라도 했으면 희망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기업을 이기는 힘 자체가 바로 작고 빠르게 실패하는데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한 애자일은 복지나 복리후생이 아닌 스타트업이 최고의 효율과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생존전략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 스타트업은 투자금이 버블 급이라서 돈이 많습니다. 와이어즈도 직무별 상위 10%의 연봉 수준으로 변경 중입니다. 2-3명의 평범한 사람보다 1명의 능력 있는 팀 플레이어가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