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독립문화에 대한 열망 깔려 있다 - 오창훈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매월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조합원 인터뷰를 싣습니다. 2016년 9월호에는 오창훈 조합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이하 홍우주=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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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주 : 제비다방을 하기 전에는 어떤 활약(?)을 했었는지 궁금하다.

레몬살롱을 7년 동안 운영했다. 지금 클럽FF가 있는 건물 4,5층에 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임대료가 비싸지 않았다. 문화지형연구소씨티알은 더 오래됐다. 벌써 11년째다. 사무실과 문화공간을 같이 쓰다가 현재 제비다방이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11년 역사가 계속 이어지는 거고 문화공간만 레몬살롱에서 제비다방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홍우주 : 공간을 옮긴 직접 원인은 임대료 상승 때문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임대료를 더 내더라도 계속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건물주하고도 아는 사이였다. 7년 이상 공간 사용하면서 대화도 잘 했고 관계도 나쁘지는 않았다. 건물주가 공간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는데 그냥 알았다고 했다.

4, 5층 합쳐서 80평 정도 사무공간과 15평 정도 레몬살롱을 운영했다. 그리고 밤을 새거나 힘들 때 잠을 잘 수 있는 간단한 휴게 공간도 있었다. 당시에 이 규모를 같은 조건에서 전부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봐도 몇 년 하다가 쫓겨날 그림이었다. 부동산에서 차라리 그 돈으로 빚을 내서 건물을 사라 하길래 그냥 지금 있는 제비다방 건물을 샀다. 그 판단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원금은 갚을 엄두도 못 내지만 월세대신 착실히 은행이자를 내면서 운영하고 있다

홍우주 : 처음부터 복합공간을 구상한 이유가 있나?

중간에 잠깐 외국 갔다온 거 빼고는 97년부터 20년간 홍대앞에서 뭔가를 했다. 긴 세월 동안 지인들이 까페하다 망하는 것도 많이 봤고 권리금 장사를 목적으로 치고 빠지는 것도 많이 봤다. 주변에 많은 공간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걸 봤다. 생길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공간들도 많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가 필요한 공간을 찾게 되었다. 문화를 매개로 소통하는 공간을 원했다. 지금 건물에 음악, 인쇄출판, 사무,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이 씨티알에 모여서 즐겁게 놀고있다.

홍우주 : 그 다양한 공간을 관통하는 슬로건이 있나?

예전에는 모토도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즐거운 게 이기는거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홍우주 : 이기는 대상이 뭔가?

초창기에 홍대앞에서 디제잉 페스티벌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옆에 리어카를 끌고 나서 몰래 공연한 적이 있었다. 홍대앞에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주류 문화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모여서 얘기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들의 입맛에 문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당신들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인터뷰 할 때마다 적당히 말을 만들어낸다. 장난스럽게 지구정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뭐라고 답을 하건 홍대랑 맞는 독립문화에 대한 열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독립잡지도 만들어서 3년 해봤다.

홍우주 : 과거 사례를 얘기해주면 더 재밌을 거 같다.

제일 씨티알스러운 놀이터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 레몬살롱에서 했던 건데 일단 주제를 하나 정해서 무작정 사람을 모으는거다. 가령 “6개월 후에 지구가 망하면 뭘 남기고 싶냐?”는 주제로 사람을 모은 적이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인은 물론 수학 전공자, 문학가, 회사원 등 원하는 사람은 아무나 다 모았다. 일단 6-7명 정도 모이면 6개월 기간을 정해서 난상토론을 한다. 2주마다 한 번씩 모여서 얘기하고 녹음하고 녹취하고 그걸 나중에 책으로도 낸다. 첫째주에는 술부터 마시자 그래서 술을 마셨다. 다음 모임에서는 지구멸망대책위원회를 발족하자 그래서 만들었다. 커피만은 꼭 남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 커피에 대한 세미나를 한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커피콩은 남겨도 먹지 못하니까 만들던 통을 남기자, 커피향을 남기자 뭐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계속 이어 간다. 결과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식으로 6개월 동안 모임을 이어가고 나중에 리스트를 뽑아 보면 우리가 평소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아닌 것들이 보인다. 아무도 멸망을 앞두고 돈을 남기지는 않는다. 진짜 남기고 싶은 건 따뜻한 담요 한 장, 태양빛 같은 것들이다. 얼핏 보면 이런 모임을 통해 크게 바뀌는 건 없어 보이지만 같이 경험한 사람들은 분명히 어떤 느낌을 받아간다. 그 느낌을 갖고 다시  각자 분야로 돌아갔을 때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있다. 그러면서 세상도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우주 : 목적이 없는 걸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회인데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었을 거 같다.

참가자들 중에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첫 회의하고 나면 반 정도가 빠져 나간다.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3년에 걸쳐 4~5회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재미있게 참여한 사람들은 다음에 또 참여하고 그랬다.  다 참가한 친구도 있고 한 번 하고 빠져나간 친구들도 있다. 당시에 대안갤러리가 많이 생길 때였는데 거기서도 이해를 못했다. 전시를 하겠다고 그러면 내용이 뭐냐고 묻는다. 내용을 아직 모른다고 그러면 뭐하자는 거냐고 욕을 먹었다. 그런데 한 번 하고 나니 이해를 하겠다더라. 큐레이터 분들이 나중에는 그냥 냅두면 된다고 쉴드를 쳐 주기도 했다.

홍우주 : 그래서 뭘 전시했나?

아까 말한 “6개월 후에 지구가 망하면 뭘 남기고 싶냐?”는 주제로 전시를 했을 때는 전시장을 우주선으로 설정했다. 지구 멸망 후에 그 건물 자체가 우주로 날아간다고 설정하고 물건을 싣기로 했다. 작가라고 부르는 창작자들이 6개월 동안 모임했던 것을 바탕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을 모아 전시했다.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전시한 사람도 있고 나름 창작물을 만든 사람도 있다. 전시장은 택배 빈상자로 꾸몄다. 사람들에게 라벨지를 나눠주고 자신이 남기고 싶은 것을 직접 붙일 수 있게 했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작업이 길어지다보니 매뉴얼 작업도 많아졌다. 고양이는 생명체라 보낼 수 없으니 고양이 키우는 방법을 적어서 보내자 이런 방식이었다. 매뉴얼 읽는 사람이 외계인이라고 해보자. 이 매뉴얼대로 되어 있는 뭔가를 발견하면 그게 고양이가 되는 거다. 그걸 계속 읽다보면 애인 사귀는 법=고양이 키우는 법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