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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의 돈모으기의 핵심은 지출통제다. 그런데 지출을 통제하는 삶은 구질구질하고 청승맞아보인다.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모아야하나 싶다.

SNS에서, 다른 사람들은 멋진 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모은다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다.

SNS에서, 다른 사람들은 멋진 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모은다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사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혼동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우리는 온 주위에 팔고 싶은 사람들로 둘러쌓여 살아간다. 팔고 싶은 사람들은, 당신이 이걸 사야지 행복해진다고 열심히 외친다. 파는 사람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주변에 파는 사람이 너무 많고 같은 이야기가 많이 반복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말이 사실처럼 다가오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그들의 말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말을 차치하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떠오르는게 있고, 그것이 소비를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이 명확하다면, 말릴 생각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소비의 출발이 이냐 이냐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이런 것들이다.

낙엽은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떨어졌다.

낙엽은 내가 돈을 내지 않아도 떨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해도 대부분 돈이 들었다. 아무튼 젤다의 전설을 하려면 게임기가 필요했고, 지식을 얻을 때도 종종 돈을 냈고, 전시를 보러 가도 외식을 했고, 카페에 가려면 돈을 내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까웠던 적은 없다. 무엇보다도, 연봉이 2천만원이었던 시절부터도, 이 일들을, 최소 일부라도 누리는데 돈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고, 그 시절에도 1년에 천만원씩은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데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연봉이 올라가도 소비의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저축 비율은 계속 늘었다. 그러면서도, 이 생활이 구질구질하다던지, 청승맞다던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일 달라지는 나뭇잎의 색깔을 감상하는 삶은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내가 누리는 다양한 특권들 덕에 이런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나는 감수성 높은 부모님과 토론을 하며 자랐다. 주변에 도서관과 미술관이 있는 서울에서 자랐다. 문학, 철학, 음악, 미술, 과학을 누리고 음미할 수 있는 4년제 대학 교육을 받았다. 그 외에도 내가 인지 못하는 다양한 특권들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누구나 내가 돈을 모은 방법을 따라 할 수 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달동네에 살 때도 부모님은 우리가 마음의 부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그저 허울 좋은 말이 아니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