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제1회 서울의현대를찾아서 × ESC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옛 닛신日清제분 경성공장, 1936년 준공), 2019년 12월부터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옛 닛신日清제분 경성공장, 1936년 준공), 2019년 12월부터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

OB 맥주 주식회사 공장터에 남아있는 담금솥(現 영등포공

OB 맥주 주식회사 공장터에 남아있는 담금솥(現 영등포공

근대 도시 서울의 탄생과 변천을 직접 걸으며 돌아보는 기획인 ESC 과학문화위원회 <서울의현대를찾아서> 프로그램이 영등포에서 16인의 ESC 회원들과 함께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서울은 정말로 빠르게 변하는 도시로, 출퇴근길에 매일 마주치던 건물과 공간이 어느 순간 가림막에 가려져 철거되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런 서울에서, ‘독립된 공업도시’로서 발전해 온 영등포는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본 첫 번째 답사는 영등포4가동의 경성부 휘장 맨홀 → 경성방직 공장 터(現 경방 타임스퀘어) → 대선제분 → 구 방림방적 터(現 에이스하이테크시티) → 쪽방촌 터(現 철도완충녹지) →영등포화교소학고 → 문래창작촌 → 문래동 영단營團주택의 코스로 진행되었습니다.

영등포가 현재와 같은 공업지대로 거듭난 것은 190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구한말~1920년대에 걸쳐 기와공장, 도자기공장, 기관차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영등포는 ‘공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영등포의 공업도시화는 1930년대 초·중반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1933년 쇼와기린맥주(現 OB맥주)와 삿포로맥주(現 하이트맥주) 공장이 들어섰으며, 1936년에는 조선제분(現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카네가후치방적(鐘淵; 종연방적, 해방 후 방림방적으로 민간불하) 영등포공장 신설 및 인촌 김성수의 경성방적 증축이 이뤄졌습니다. 바로 이 시기, 영등포는 처음으로 서울(당시에는 경성京城부)에 편입됩니다. 신한은행 영등포지점 앞에는 이 무렵의 경성부 휘장이 새겨진 맨홀 뚜껑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다. 80년의 세월을 이겨낸 맨홀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당신들이 접하는 지금의 영등포의 산 증인은 바로 나요“ 라고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영등포에 들어선 수많은 공장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모두가 헐려 나갔습니다. 경성방직 사무동과 대선제분 공장, 두 곳의 흔적만을 남기고서. 1936년에 세워진 경성방직 사무동은 타임스퀘어 정원에서 카페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해 바로 이웃해서 세워진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은 식민지시기 산업유산을 문화재로서 받아들이게 된 2000년대의 시류에 올라타는데 성공하여 도시재생을 통해 재탄생 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맥주의 전신이 된 두 곳의 맥주 공장과, 60~70년대 노동 착취의 아픈 역사까지 담고 있던 방림방적 영등포공장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어떤 공간과 어떤 건축물이 ‘보존’이라는 선택을 받아 살아남게 되는 것인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례입니다.

방적공장 터에서 길을 건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경부선 철길변을 따라 조성된 널따란 녹지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해방 후 갈 곳 없는 이들의 안식처였던 쪽방촌이었던 곳입니다. <한겨레>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쪽방촌이 철거된 이후 거의 대부분의 거주자들이 반경 1km를 떠나지 못했으며, 그대로 삶을 마친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화려하게 공업도시로 부상한 영등포였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이들도 함께 모여들었습니다. 영등포는 과연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곳이었을까요.

답사의 종착지인 문래동 영단주택지는 LH공사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조선주택영단, 쉽게 말해 조선총독부의 주택공기업이 1941년에 조성한 ‘신도시 주택지구’입니다. 500채가 한꺼번에 지어져서 ‘오백채 마을’이라고 불린 이 동네는, 지금도 대부분의 영단주택이 주택 및 철공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페와 맥줏집,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 점차 영역을 넓혀나가는 중입니다. 1941년의 주택단지가 2018년에도 그대로 기능하는 모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장들과의 선명한 대비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첫 번째 <서울의현대를찾아서> 답사를 통해 ‘영등포’가 지닌 깊이와 정체성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수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서울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떠나보내야 할지는 이곳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자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서울의현대를찾아서>가 이런 ‘즐거운 과제’에 보탬이 되는 장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자료

『永登浦 近代100年史』,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화공보실, 1994

『永登浦의 名所와 地理』,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1993

『永登浦區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화공보실,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