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준.jpg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로 본캐는 시각 예술가, 부캐는 문화운동활동가라고 소개하는 신민준입니다.

주로 하는 일은?

관심사가 넓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싶을 정도로 잡다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근데 부캐가 본캐를 많이 잡아먹고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계속 가지고 있다 보니까예전에는 작업을 못하는 저 자신이 좀 답답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작업을 어렵게 생각하는 스타일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일정부분은 체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이후에  활동과 작업을 병행하면서는 내 작업과 활동이 나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활동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이나 생각들, 공부하는 것들이 그물망처럼 얽히는 지점을 작업으로 풀어냈을 때 그 순간들이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생각을 좀 내려놓고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지 뭐. 하고 지내요.

가장 최근엔 뭘 하고 지냈어요?

최근에는 강정아 이사가 기획한 ‘프린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2 : 친애하는 자유에게 ’에 작가로 참여했었고 파견 예술인으로 성북구 예술기관과 매칭되어서 ‘성매매 집결지에 공공 예술로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에 대해 고민 중에 있어요. 예대넷은 바로 어제 국회와 함께 <예술대학 살리기 연속 토론회> 를 진행했네요.

정말 여러 일을 하고 계시네요. 학교에서 학생회로도 활동을 하시고 현재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까지, 민준님이  활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특정한 계기와 경험들이 계속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사회적인 일에 대해 모른 척하고 사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는 피할 수 없는 경험들. 사실 공적인 일을 하는 건 조금은 피곤한 일이기도 해요. 이전에는 도망치고 싶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도망칠 수 없겠구나, 계속 비슷하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지랖 넓은 제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얼마 전 홍우주 이사회에서 활동가들의 MBTI가 궁금하다. 다 비슷하지 않냐 이런 얘기가 나왔었는데  활동가들의 성향이 조금 비슷하긴 한 것 같아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험을 하고 그런 계기들이 쌓여 활동을 시작하고 이어가게 되는 게 아닐까요? (웃음)

예전엔 잘 몰랐는데, 요즘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사회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라고 선생님이 하잖아요. 그때 제가 써야하는 용돈을 다 냈는데 그게 뿌듯하더라고요. 지금은 시혜적인 시선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또 자라면서 앞서 말했던 몇몇 경험이나 계기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응원했었고 고등학생때는 전교조 명단이 공개되면서 학교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등교하니까 친구들이 빨갱이 교사라고 수근대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들은 사실 전교조가 뭔지도 잘 몰랐고 저도 잘 몰랐는데 말이죠. 근데 저는 막연하게 이게 왜 문제야?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입시와 군대를 거치며 보수적인 경향이 생겼어요. 스스로 중고등학생 시절을 반사회적이었던 시절로 정의했고 그 때를 부정했죠. 어느 날엔 제가 페이스북에서 어떤 영상을 하나 봤었어요. 아현포차 철거 집행 현장을 찍은 영상 이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참혹하더라고요. 댓글을 보니 “건물주가 나가라고 했으면 나가야지”라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린 거에요. 그때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저 분들과 다를게 없지 않나? 우리 엄마도 지금 세 들어 장사하고 계시고..  한꺼번에 감정과 생각이 몰려오는 거에요. 군대에서 내가 어른스러워졌다 철들었다 했던 건 그냥 기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에 사람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죠.

비슷한 시기에 함께 학생회 활동을 하던 선배가 회장 선거에 나가보라고 하는 거에요. 그 선배도 전역 이후에 처음엔 운동권이라 제가 싫어했었는데 함께 활동하다 보니 인간적으로 좋아지더라고요. 그런 선배가 열심히 하던 일이고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가치를 갖고 일했는지 너무 잘 알아서 저도 학생회 일을 열심히 일 한 것 같아요.  학내 운동, 그러니까 소위 예전엔 학원 자주화 투쟁이라고 그러죠. 우리 때는 교육권 운동이라고 불렀고 그런 걸 하다가 1학기에는 수업을 거의 듣지 못하고 일했었어요. 그런데도 학기가 끝날 때 까지 변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해결하는 과정에서 불쾌한 경험들도 꽤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학내에서 얘기해봤자 절대 들어주지 않는구나, 학교 내에서 움직여서는 안 되겠구나. 이건 타당성과 설득력의 문제가 아닌 결정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는 대체 우리에게 뭘 해주는 걸까? 이런 경험들이 쌓여 그 시기에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다른 학교 친구들과 예대넷을 만들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땐, 이렇게까지 오래 할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예술대학생네트워크는 어떤 조직인가요?

예대넷은 예술대학 학생회 결사체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학생회보다는 활동가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시민 단체에 가까워요.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초기 시작할 땐 주로 등록금 문제를 다뤘지만, 요즘은 문화의 공공성이나 (청년) 예술에 대한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네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에 대한 관심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라서 최근엔 <학생자치 실태와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지원 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작업과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민준 님이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19년도까지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돈이 안 됐어요. 그 시기에는 평일에는 단체 활동을 하고 생계를 위해서 주말에 벽화를 뛰었죠. 단체 활동은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도 많았고요. 그래도 최근엔 상황이 나아져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는 버는 것 같아요.  다른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일차적으로는 ‘성격에 잘 맞는 일’ 이라서 인 것 같아요. 저는 배우는 걸 좋아하고 담론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그걸 또 앉아서 고상하게 이야기 하는 건 잘 맞지 않고요. 알면 실천해야지. 알기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서요. 또 활동가로서 좋은 점은 활동은 자율성과 자기 선택권을 많이 갖는다는 것이에요. 다른 직장인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죠. 또 보통의 직장 일은 커리어의 측면에서 자기계발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그게 때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을 좋게 포장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활동가는 그런게 아니라 품격과 존엄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성장할 수 있는 자기계발 기회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예대넷 활동을 해오면서 시야가 좀 넓어졌어요. 활동가로 있다 보면 화나는 일도 너무 많지만 그러다가도 문제를 해결했다는 성취의 경험들이 쌓이면 활동을 지속할 힘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근데 앞으로는 본캐와 부캐의 밸런스를 잘 살려서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하고 계신 일이 많아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할 것 같아요. 에너지는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이세요?

그걸 잘 못 해서 요즘 배워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졸업 하고 나서부터는 항상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리다 보니 늘 연말엔 번아웃이 오더라고요. 올해는 번아웃에 빠지지 않으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주말엔 꼭 쉬고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일을 좀 쳐내기도 하고요. 스스로 기준을 세우려고 해요. 마침 오늘부터 휴가라 어떻게 보낼까 계획 중이에요.

가장 가까이에서 홍우주를 보며 느끼는 건 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선 정말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이에요. 민준 님도 현재 예술대학생네트워크라는 단체를 이끌어 나가고 계시는데 힘들진 않아요?

쉽진 않죠.  지금의우리 단체는 여건 상 기본급이 없고 상근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데, 여러 곳에서 요청하는 일은 많고… 사실 좋은 여건은 아니죠. 보통의 직장처럼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기 때문에 성취감이나 자신의 만족감으로 보답이 되어야 할 텐데 스스로 그런게 지금 단체 내에서 잘 되고 있는지… 자기 전에 늘 반성하고 고민해요. (웃음) 사실 저는 사람들을 두루두루 잘 챙기는 스타일이 못돼요. 한 사람을 깊게 천천히 알아가는 편이죠. 그러면서 일하는 스타일이 혼자 빠르게 처리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니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남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제가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린 거죠. 그래서 요즘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좀 바꾸려 노력해요. 그래도 동료들이 제가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주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큰 방향을 그리고 계획은 잘 짜지만, 그걸 함께할 사람들을 잘 못 챙기는 스타일이라면, 다른 동료들이 사람들을 챙기며 독려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홍우주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인 <도시문화랩>을 제안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사업이 진행되는 걸 보니 어떠세요?

기존엔 학생들이 지원할 수 없는 사업들이 대부분 이었잖아요. 저희는 예술대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장르 밖에서, 또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사업을 제안했어요. 올해 구체적인 성과가 아니더라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죠. 그게 관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요.

한편,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사업을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의 느낌처럼 하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신자유주의의 내면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단면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해요. 사실 이 사업을 기획할 때는 재단과 토의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지원 외에도 단체들의 지원을 통해, 운동권 용어로는 ‘재생산 효과’를 의도 했는데요. 더 친밀한 용어로 말하면 ‘동료를 만나는 거겠죠.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관계망들이 생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사업이 동료를 찾는 과정과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저는 심사 과정을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지켜보게 되었는데요. 설계하는 단계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운영 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커리큘럼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진심으로 동료를 만나고 싶어 하는 단체들이 선정되었다고 생각해요. 홍우주의 사업 발표도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후에도 홍우주의 교육 과정의 사진들을 인스타에서 보면서 매번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중이랍니다.

단체의 입장에서 학생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힘든 점도 많지만 졸업하지 얼마 되지 않은 대학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학생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랩을 운영하는 단체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전반적인 큰 생태계로 보면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학생들을 호명하는 방식이 여태까지는 모두 무급노동, 공모전, 커리어 이런 것들이었잖아요. 근데 도시문화랩은 학생들을 존중해주는 사업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운영하는 단체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번이 첫 사업이다 보니 기준이 모호하고 부족한 점들이 많겠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있어서 추후에도 보완이 많이되어 단체와 학생들이 win-win하는 방향으로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희가 사업 관련 성과 및 개선방향 연구를 맡게 되었으니 그 때 홍우주가 솔직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1-2명이라도 홍우주와 동료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겠네요.

홍우주와는 어떤 인연이에요?

저는 홍대를 나왔는데요. 16년도쯤 홍대에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했었어요. 학생들도 내가 좋아하던 가게들이 사라지고 추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죠. 그래서 당시 홍대 거리미술전 주제도 젠트리피케이션이었어요. 근데 오프닝 이후에 학교에서 난리가 난거에요. 이사장과 마포구청장은 축제 지원금으로 왜 이런 전시를 하느냐 불쾌한 속을 드러냈고 반사회적인 전시라고 이런 곳에 지원 못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어요. 그리고 다음해에는 정말 지원금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안 나오는 것까지는 아닌데 사전 검열이 많아졌어요. 그때 16년도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주제일 때 관련 세미나를 당시 홍우주 정문식 이사장이 진행했었어요. 굉장히 인상 깊었죠. 개인적으로는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은 뭘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되고요. 그렇게 홍우주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어요.

17년도쯤 관광특구 문제로 홍대 학생회에 홍우주의 연대 요청이 왔었어요. 당시에는 저도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서명해달라고 연명만 공유했는데 이후로도 홍우주와 같이 뭔갈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시에는 제 역량도 부족하고 여건이 안되어서 잘 추진은 안되었죠. (웃음) 그래도 마음 속에 홍우주를 계속 생각하고 있긴 했었어요. 그러다 19년에 홍우주 5주년 기념 행사에 초대 받았는데, 조합원 가입 제안을 받았어요. 근데 앞서 말한 것처럼 19년은 제가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한 시기여서 가입은 하지 못했고 마음에 빚으로만 남았죠. 그러다 작년부터는 비교적 여유가 생겨서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됐어요.

가입하고 보니 어떤가요?

제가 홍대에 대한 환상을 갖고 학교에 입학했거든요. 홍대앞 인디씬… 자유, 활기, 음악 등등 기대가 많았는데 막상 학교 다니면서는 일만 하느라 여유 있게 즐기질 못하고 졸업했어요. 제가 학교를 다녔던 14~18년도가 홍대 앞이 자본에 의해 점점 더 상업화된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늘 있었는데 조합원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학창시절 때는 많이 못해본 홍대 앞에서 문화적인 경험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조합원들과 커뮤니티라던가.. 활동을 잘 못 해서 아쉽네요. 홍우주에서 조합원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보니 제가 홍우주의 조합원으로 있는 목적은 어린 시절의 기대한 홍대 앞에서의 자아 성취군요. 반농 반진입니다. 그래도 저도 다른 단체에 속해 있으니까 문화 씬의 동료로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같이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조합원 대상 사업을 많이 추진해주세요! 거창한 사업이 아니더라도 조합원들 더 많이 알아가고 싶어요. 아 코로나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