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유> 원문 & 번역문

<aside> 🐾 아래 원문과 번역문을 붙입니다. 원문은 ctex.org에서 옮겨왔습니다. (링크) <장자>는 통행본마다 글자에 조금 차이가 있고, 장절의 구분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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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아래 번역은 모두 기픈옹달 이 직접 옮겼습니다. 딱딱한 직역보다는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는 문장으로 옮겼습니다. ‘우화’라는 형식에 따라 마치 이야기하듯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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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펼치기)

[번역문] 소요유 : 떠나자! 세상 밖으로

<aside> 💬 <장자 : 내편>에는 각각 세 글자의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제목은 누가 붙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후대 <장자> 편집자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해석을 담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장자> 본문을 자유롭게 읽기 위해서는 제목을 가리고 보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천년 넘게 불린 제목이라 제목은 그대로 두되, 이를 풀이하지는 않고 대략적인 내용을 솎아 별도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소요유> 편은 곤과 붕이라는 거대한 존재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까마득히 먼 데서 나타나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크기로 독자를 압도합니다. 이 크고 알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로 <장자>를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멀리 떠나자는 권유이기도 합니다. 모험이라 불릴만한 경험. 장자는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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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아득한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 그 이름은 곤인데,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지. 이 물고기는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은 붕이야. 그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가면 날개는 마치 하늘의 구름처럼 보여. 이 새는 바다를 뒤흔들며 아득한 남쪽 바다로 날아가. 아득한 남쪽 바다란 천지天池, 하늘의 연못이라 할 만한 곳이야.

<제해齊諧>라는 기이한 책에도 기록되어 있어. "붕이 남쪽으로 날아갈 때 물이 삼천리나 높이 솟아. 붕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까마득히 구만리를 올라가, 거기서 반년토록 쉰다고 해."

아지랑이가 하늘거리고 티끌이 날아다니며 살아있는 것들이 숨을 쉬어.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그게 본래 그 색깔일까? 아니면 까마득히 멀어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일까.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에도 그럴 거야.

물이 충분히 많지 않으면 커다란 배를 띄울 수 없어. 바닥에 움푹 파인 곳에 잔을 엎지른다고 해. 그럼 거기에 티끌을 배로 삼아 띄울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잔을 띄워보겠다고 하면 바로 바닥에 닿아. 얕은 물에 큰 것을 띄우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바람이 충분하지 않으면 커다란 날개를 띄울 수 없어. 붕새가 구만리를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바람이 아래에 있다는 거야. 그제야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면 거칠 것이 없지. 그렇게 붕새는 남쪽으로 날아가.

그런데 매미와 메추리는 붕을 보고 비웃는단다. "우리는 바짝 힘을 내어 날아가면 나무에 부딪히는 게 고작이야. 그러다 나무에 닿지 못하고 땅에 처박히는 일도 있어. 그런데 뭣하러 구만리를 올라가 남쪽으로 날아가고 그런담."

들로 소풍을 떠나는 사람은 세 끼를 먹고 돌아와도 여전히 배가 불러. 백 리 길을 떠나는 사람은 밤새워 곡식을 찧어야 해.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어떨까. 석 달간 양식을 모아야 하지. 저 매미나 메추리가 무엇을 알까. 작은 앎은 커다란 앎에 미치지 못하고, 작은 삶은 커다란 삶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야. 어떻게 그런 걸 아느냐고? 아침에 피는 버섯은 그믐달을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어. 작은 삶이란 이런 거야. 초나라 남쪽에 명령㝠靈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오백 년을 봄으로 다시 오백 년을 가을로 산다고 해. 저 먼 옛날에는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데. 팔천 년을 봄으로 팔천 년을 가을로 살았다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팽조가 오래 살았다고 떠들어 대면서 그만큼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애닯지 않겠냐고.


탕임금이 극에게 물었다는 것도 이런 이야기야. 풀 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북쪽, 아득하고 컴컴한 바다가 있데. 그것을 천지天池, 하늘의 못이라 하지. 거기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데 크기가 몇천 리나 된단다. 그 크기를 아는 사람이 없어. 다만 이름이 있는데 곤鯤이라 해. 거기에 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은 붕鵬이야. 마치 태산처럼 커서 날개를 펼치면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아. 회오리바람을 타고 빙빙 돌며 구만리를 올라가 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에 이르면 남쪽으로 떠나, 남쪽 아득하고 컴컴한 바다로 가는 거야.

그걸 보고 메추리가 이렇게 비웃는단다. "저놈은 또 어딜 가는 거야? 나는 팔짝 뛰어 날아올라도 고작 몇 미터를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데 말야. 숲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면 되었지 또 어딜 갈 필요가 있겠어?" 이렇게 작은 것과 큰 것은 달라. 그러므로 지혜가 관직 하나에 어울릴 만한 사람, 품행이 고을 하나를 다스릴 만한 사람, 군주 하나를 섬길 만한 덕을 갖춘 사람,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 따위는 메추라기처럼 자신을 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