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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를 접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첫째로 마르크스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대단히 적다. 둘째로 마르크스를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곳들에서 마르크스를 교조적으로 가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많은 언론들은 마르크스주의가 교조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위험한 사상이라고 선전 할 수 있었다. 일말의 진실이 섞인 선전은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거들떠보지조차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좋건 싫건간에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근로기준법, 무상복지, 공영기업등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론적 토대는 결국 마르크스주의이다.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이런 요소들에 대해서 시민들은 반드시 끊임없는 토론을 해야 하고, 더 질 높은 토론을 위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거들떠볼 필요가 있다.

딜레마 상황이다. 마르크스를 배울 필요는 있는데, 배울 통로는 찾기 어렵다. 게다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거나 읽으면 종북소리를 듣게 될 것 같고, 애써 공부한 뒤에 주장의 근거로 마르크스를 인용하면 빼도박도 못하게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힐 것만 같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은 이런 딜레마를 해결 해 주는 책이다. 먼저 책의 표지가 귀엽기 때문에 밖에서도 시비걸릴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많은 마르크스 관련 서적이 "마르크스는 잘 모르더라도 스피노자랑 헤겔, 아담 스미스 정도는 읽어 봤겠지"라고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배경지식조차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말 가볍게 거들떠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책은 크게 3가지 내용을 얘기한다. 첫째, 마르크스주의가 그렇게 이상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사상이 아니라는 점. 둘째,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을 떠난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제로 아르바이트나 직장생활에서 마주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시시콜콜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 셋째, 그리고 그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상당히 현실적이고 체계적이며 평화로운 해결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많은 맑스주의 관련 책들이 세번 째 내용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두 번째 내용에 대해 조금 얘기하며 첫째 내용에 대해선 머리말에서만 잠시 얘기하고 마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분량 구성이 그 반대이다. 즉, "맑스주의가 그렇게 이상한게 아니야. 다 오해라고!"를 말하는데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맑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이 내용이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아닐까 싶다. 귀여운 표지 디자인에 혹해서 첫장을 슥 들춰보는 순간까지도 '...그래도 역시 위험한 사상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의 정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중에 어디가서 마르크스를 인용 할 때도, "마르크스를 인용하다니. 그런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어! 넌 종북이구나!" 라는 반응이 나왔을 때,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정보는 "아니야. 마르크스주의는 북한에서 하는 그런거 아니야"라고 말 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책이다.

그렇다고해서 마르크스주의를 이미 만나본 사람들에게는 재미 없는 책이란 얘기는 아니다. 나 또한 학부에서 나름 열심히 마르크스를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마르크스주의의 면모가 상당히 많았다. 우리나라 학생 운동권 출신 교수님들의 책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소련 및 중국의 공산당과 별도의 노선을 걷는 합법적인 공산당이 활동하는 나라의 사회학 교수님만이 알려 줄 수 있는 놀라운 정보와 안목이 가득 담겨있다.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 뿐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