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1

서찬휘(SEO ChanHwe)

서찬휘입니다.

저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입니다.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참여하던 잡지가 드잡이를 당해 백서에도 올랐습니다. 비단 그뿐만은 아닙니다. 참여했던 전시는 도록 원고를 썼다가 정권의 매타작이 겁났던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검열에 나서는 바람에 썼던 글이 비매품으로 전락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블랙리스트 건으로는 지난해에 소송 결과로 배상금을 받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정치 성향은 보수지만 한국식 우파일 수는 없는, 그래서 민주 노선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지지할 순 없는- 그래서 민주 노선을 부정하는 자라면 민주당이어도 지지해줄 순 없는.

그리고 나서 정권이 다시 한국 우파에게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목구멍에서 말이 잘 안 나갑니다. 무어라 이야기를 할 때 일단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마침 오늘이 3.1절이니까, 독립운동가 웹툰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관련자들을 볶고 있으면서 독립운동가를 예우한다고 공지를 올리는 정부에 대해 개인 성명서라도 내고 싶은 심정인데요. 막상 그러려니 근래 입조심을 당부하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평판을 생각해라. 소셜 네트워크에서 문제 될 만한 글도 다 지워라. 임용이라도 되고 싶으면 사려야 한다. 말인즉 지금은 다시 눈치를 봐야 밥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덜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죠. 문득 자고 있는 딸아이 얼굴을 쳐다 봅니다.

이게 뭐냐, 란 심정과 이제 다 귀찮다, 란 심정이 어지러이 교차합니다. 블랙리스트와 자체 검열 피해자여서인지, 나이를 먹고 있어서인지, 둘 다여서인지. 사실 둘 다인 것 같긴 해요. 훨씬 큰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신 마당에 우스운 이야기지만요.

그게 꼭 국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좁은 만화 바닥에서도 입을 막기 위해 + 귀찮게 만들기 위해 소송전이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차례 소송 시비와 협박을 당해 본 결과 저는 이제 만화'계'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대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떠나가고, 입을 닫은 채 자기 일에만 충실하겠다 선언을 하게 되는 경로를 밟습니다. 국가나 집단이나 결국은 작은 집단이 모이고 모여 그 평균치가 국가의 수준이 되는 것이니, 다를 바 없는 거죠.

저도 그렇게 열기를 잃은 채 그만 둘 재간이 없어 계속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네요. 다들 그렇게 조용히 살면서, 분노를 삭인 채 어딘가에서 쓰이기 위한 프로필을 쌓아갑니다. 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눈치 안 보면서 살 수 있는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독재정권이었으면 넌 이미 관 속에 들어갔겠지!"란 말을 내지르는 분들 앞에서 무엇을 말할까요.

애 얼굴을 다시 봅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이젠 좀 정주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