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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여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생산소에서 대장장이이자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민입니다.

대장장이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대장장이는 농경사회 이전,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직업이에요. 철을 불에 달궈서 모루라는 쇳덩이에 대고 망치로 때려 도구나 소품을 만드는 단조라는 기술을 사용해요. 주로 금속을 다루긴 하지만 나무나 유리 등 시대에 따라 재료나 만드는 것이 달라지고, 창이나 칼같은 무기류나 실생활에 필요한 공예품, 주방용품을 비롯해 크게는 설치물도 만들 수 있는 공예인이자 전문인이에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어릴 적부터 수공예,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공구를 다루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아다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외국 대장장이들의 영상을 보게 됐어요. 그전엔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모르고 있었고 막연하게 금속 공예를 하시는 분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영상을 통해 이 직업에 대해 알게 되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에 한국에 그런 기술을 배울 곳이 어디 있을까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 한국에는 마땅히 배울 곳이 없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부여 전통대학교를 추천해줬어요. 항상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지만, 대장간 일 만큼 마음에 쏙 드는 일이 없었어요. 더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어요.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 뭘 하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전통대학교를 수료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혼자 대장간을 차리기에는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영주에 있는 대장간에 취직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아마존에 호미를 파는 분인데, 저에게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영주에 가면 기술은 배우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여에 남게 됐어요.

결국 부여에 남아 대장간도 만들게 됐네요, 대장간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거예요?

부여에 남을지, 영주로 갈지 고민하면서 주변에 많은 조언을 구했고, 그중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김정기 선생님, 저희 사이에서는 ‘마스터’라고 불리시는 분이었어요. 마스터가  “부여에 남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많은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해봐”라고 조언해주셨죠. 그렇게 부여에 남기를 결정 짓고 동시에 대장간을 지을 장소를 여기저기 보러 다녔어요. 마스터와 트럭을 타고 다니며 돌아다녔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기준에 맞는 공간이 별로 없어 그냥 이대로 영주에 가야 하나 다시 고민 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노드트리 팀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들께 당시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장암에 위치한 본인들의 집 한쪽에 닭장과 창고로 사용하려던 공간을 무상임대로 내어줄 테니 작업실로 개조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셨어요. 정말 뜻밖의 고마운 제안이었죠.

작년에 처음 부여에 와서 만난 친구들도 있고, 서울에서 온 홍우주와도 인연을 맺었고, 마스터와 그 친구분들과도 조금씩 친해진 상태였는데 다시 새로운 곳에 가서 다른 인연을 만들기엔 조금 지친 상태였어요. 영주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전통대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마스터와 상철 형님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올리고, 벽을 세워 지금의 대장간을 만들게 됐어요.

요즘엔 주로 어떤 작업  하고계세요?

최근엔 생산소를 만들면서 ‘생산-도시’ 전시를 준비했어요. 20대 청년이 대장장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내는 과정, 전시장(생산소)을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작업으로 묶어 공간과 활동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