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의 발생 원인은 대중의 열악한 환경과 구세주의 등장 때문이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은 막대한 피해 보상금을 부담하게 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 대공황이 발생해 독일 국민의 상황은 매우 좋지 못했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버티는 대중의 앞에 히틀러라는 구세주가 등장한다. 독일인은 그 어떤 민족보다 우수하며, 현재 독일인의 상황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그의 말에 대중들은 현혹됐다. 마음이 약해진 사람일수록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커진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찾기도 한다. 당시의 독일 대중 개개인은 열악한 삶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냈고, 생과 사의 경계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독일인은 우수하다는 히틀러의 말을 듣고, 자신의 정체성을 ‘개인'이 아닌 ‘집단’에서 찾았다.** ‘우수한 독일’이라는 집단에 속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온 사람'이 아니다. 그 대신, ‘우수한 독일인 중의 하나'로 새롭게 정의되며 이전에 느끼지 못한 고양감이 든다.

<aside> 💬 국가는 히틀러에게 굴복했고 그의 이름을 오치미으로써 망설임 없이 그 사실을 공포했다. 히틀러의 이름은 마법의 단어였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일종의 예식이었다. 그의 이름은 무한한 권력이었다. 조국은 국민의 마음을 애달프게 한다. 조국은 날 때부터 인간의 숙명인 외로움을 지워버리고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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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독일 대중이 ‘개인으로서의 나'를 내팽겨치고, 맹목적으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쫓은 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에서 얼마나 찾느냐는 사람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독일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혐오할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집단에서 맹목적으로 찾은 사람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독일인의 우수성을 믿지는 않지만, 현재의 체제에 수긍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히틀러의 이야기 자체가 말이 되지 않고 비윤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처럼 다양한 인물상을 보여준다.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없는지 판별하는 15명의 여성, 이 중에서 현재의 체제에 열광하는 사람, 반대하지만 수긍하는 사람, 그리고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들 모두가 처해진 현실은 비슷하다. 하루하루 독이 있을지 모르는 음식을 먹고, 나치 군인에게 압력을 받으며, 전쟁터에 떠난 남편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체제를 향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aside> 💬 나는 겁쟁이였다. 그래서 무엇 때문에 엘프리데가 자기랑 상관도 없는 일에 그렇게 발 벗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당사자는 원치도 않았는데 말이다. 엘프리데의 영웅심은 말도 안 되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눈에는 모든 영웅적인 행동이 어리석어 보였다. 나는 신념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앞에 나서는 모든 사람들이 창피했다. 특히 정의를 위해 나서는 이들을 볼 때는 더 그랬다. 그것은 낭만적인 이상주의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과는 동떨어지고 순진해빠진 거짓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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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인공인 로자는 중간 지점의 인물로 등장한다. 현재의 체제에 반대하지만,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에 타협한다. 동시에 자신의 타협에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즉, 나약함을 느끼는 자신을 이해함과 동시에 혐오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히틀러를 싫어하고 나치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긍하고 일상을 보낸다. 그녀는 유대인 신분을 숨긴 엘프리데를 좋아한다. 동시에, 엘프리데를 수용소로 보낸 치글러를 사랑한다. 이처럼 로자는 선악, 옳고 그름과 같은 이분법적인 인물이 아니며, 그렇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혼란을 느낀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향한 혐오, 죄책감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혼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를 말하며, 스스로 사유 함을 뜻한다.

<aside> 💬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약함은 나약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죄책감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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