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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라는 글자는 참 자주 쓰입니다. “사회적 문제”, “경제적 문제”, “논리적 표현” 등등... 하지만 의외로 대부분의 경우 “적”자를 빼보면, 단어의 뜻이 더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 문제”, “경제 문제”, “논리가 선 표현” 등등 과 같이 말이죠.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적”이라는 접미사의 역할이, 의미의 경계를 약간 흐릿하게 만드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적”의 정의. “그 성격을 띠는”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국어사전에 수록된 “적”의 정의. “그 성격을 띠는”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적”이라는 접미사에게는 분명 그 역할이 있습니다. “이 단어로 표현하기 애매한” 대상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 이 “적”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하면, 더 정확한 단어를 찾지 않고도 의미를 구성할 수 있죠. 어떤 명제가 철학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철학적이다”라고 표현 할 수 있는 것 처럼요. 그러니까 “적”은 일종의 언어생활의 긴급패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긴급패치는 사용하기 쉬운 만큼 남용되기도 쉽습니다. 예컨대 “가정적인 남자”는 대체 어떤 남자일까요? 10사람이 모이면 10사람 마다 다 제각기 “가정적” 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 할 것입니다.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기기 위한 단어 선택이라면 괜찮지만, 어떤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적”이라는 단어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컨대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말하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쓰는 아버지”를 말하는 것인지 등등, 그 이야기의 맥락에 맞는 더 정확한 단어를 고르는 노력이 더 선명한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IT 업계에서 단연코 남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기술적” 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기술적이라는 단어도 앞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많은 경우 그냥 쓰지 않음으로써 문장을 더 명확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느끼는 더 큰 문제는, “기술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긋지 않아도 되는 “경계”를 긋게 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기술적으로 성장을 하고 싶다” 는 표현을 봅시다. 이런 문장은 해석하기에 따라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내가 추구하는 노력의 경계 밖에 있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요새는 좀 덜 하지만, 아직까지도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의사소통이 서툴고 혼자 구석에 처박혀서 열심히 코딩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하게 퍼져있는 것 같습니다.

“마트가서 우유 사고, 아보카도 있으면 6개 사와”라는 주문에, “아보카도가 있었기에 우유를 6개 사오는” 남편.

“마트가서 우유 사고, 아보카도 있으면 6개 사와”라는 주문에, “아보카도가 있었기에 우유를 6개 사오는”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