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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상황에 따라 몇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해요. 직업을 물어볼 때는 일단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소개를 합니다. 서울 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오소리웍스라는 독립 음악 프로덕션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직업이 아닌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음악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홍우주와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16년 가을쯤 홍우주가 개최했던 토론회가 있었어요. 인디씬에 필요한 역할들에 관한 토론회였는데 어쩌다가 그 토론회에 나갔고 거기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때 문식님께서 저를 보시고 이 사람과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가입과 동시에 홍우주에서 DIY로 음악을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를 하게 될 건데 저와 그 프로젝트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문식님이 말씀해주신 것은 제가 당시에 음악인으로서 활동하던 중이기도 하고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운영하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신진 음악가들이 모여 말 그대로 우리 안에서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자립하자는 취지의 조합이에요. 활동을 접은 지 1년 정도 됐을 때 문식님께 연락이 온 거죠. 이후 2020년 총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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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식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고 했는데 홍우주 전부터 관계가 있으셨나봐요.

문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동대문 평화시장 앞 전태일 흉상이 있는 다리의 공식 명칭을 '전태일 다리'로 바꾸자는 운동을 하면서였어요. 저는 군대 가기 전부터 프랑스 철학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군대에서 신문을 관리하는 보직이었어서 남는 시간이 많았어요. 사회과학 서적 읽고 철학 공부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전역 후에는 음악가로서 연대 활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전역했을 때가 2009년 이명박 정부,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시기였어요. 바로 용산참사 현장에서 활동했고 그 이후에도 재개발 현장이나 쫓겨나는 사람들에 관련된 일들을 계속했어요. 당시에 문식님은 뮤지션유니온이라는 조직의 대표를 맡아 음악가들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활동을 하고 계셨죠.  한 번은 두리반이라는 홍대 앞 칼국수 집이 재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역 뮤지션들이 두리반 앞에서 공연도 하고 축제 같은 것들을 하면서 재개발 반대 운동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자립음악생산조합과 뮤지션유니온이 만나게 된 거죠.

홍우주의 일 말고 다른 작업들도 많이 하고 계신데 어떤 일들을 하고 계세요?

홍우주 이사장으로서 홍우주 일이 아닌 다른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저는 음악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고 있어요. 예전엔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는데 지금은 제 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어요. 단편선의 음악을 하고 싶지 않냐고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어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자아를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저를 보여 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또 보여주고 싶을 때가 오면 그때 보여주면 되는 것이고요.  음악의 내용은 사회적 맥락이나 요소들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아요. 이를테면 슈퍼스타 케이가 방영될 때는  통기타를 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쇼미더머니를 하면 힙합 하는 친구들이 많아져요.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라 지원 사업의 내용에도 영향을 끼치죠. 제가 지금 홍우주에서 활동하는 것과 생활문화센터에서 하는 일, 정치적으로 내는 목소리들도 결국엔 다 음악 얘기라고 생각해요. 조금 무리를 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는 이유는 음악인으로서 저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현장에 붙어 있으면서 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하고 개입해야 아이덴티티를 지킬 수 있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인생이 조금 피곤해지기는 하죠 (웃음) 큰일도 하고 싶지만 작은 일을 아예 놓으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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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에서 기획자로,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음악가인 동시에 활동가로 활동을 했던 사람이에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이라는 조합을 결성했던 경험도 있고 기본 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라는 조직도 만들었었죠. 그런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의 기획이라는 것을 접하게 됐어요. 축제 사무국을 운영하면서 축제를 기획하기도 하고요. 전업으로 기획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 하게 된 계기는 그것도 결국엔 음악을 통해서였어요. 음악을 만드는 건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비슷해요. 각본을 쓰고 내가 원하는 연기를 담아내고 내 의도대로 편집하고 마케팅을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 과정 앞에는 내가 이 작품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또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왜 봐야 하지? 이것에 대해서 스스로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반대로 질문을 던져서 이러이러해서 넌 이 영화를 봐야 해.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게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이게 기획이 아니면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의 전 과정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기획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아티스트의 삶과 기획자의 삶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도 인간이니까 가끔은 옛날 생각을 하기도 하죠. 그때는 그때 나름의 불행이 있었고 지금도 지금 나름의 불행이 있어서  뭐가 더 행복하고 불행한지에 대한 생각은 잘 안 하게 돼요. 다만, 저에게 너무 좋았던 일들이라는 건 어느 때나 있어요. 그게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기억들인 것 같아요.  라이프 스타일이나 생각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닥치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엔 거의 쉬는 날이 없으신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냥 재밌게 사는 게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재밌는 게 너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거든요. 30대가 되고 인생이 너무 안 풀린다고 생각이 들어서 우리 조합원인 벨로주 대표님과 한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대표님께서 저한테 “ 5년 정도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일해봐. 그럼 5년 뒤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수도 있어.”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정말 따뜻한 얘기고 어떻게 보면 정말 냉정한 얘기죠. “인정하고 그냥 해.” 이런 얘기잖아요. 그게 이상하게 공감이 됐어요. 저보다 오래 산 형이고 굉장히 존중하는 형이라 ‘저 형이 저렇게 말하는 데는 근거가 있겠지. 그럼 해보지 뭐!’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지원사업이나 센터 일 말고 정말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