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자기도 해외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데 마침 모 개발협력 기관에서 해외 파견 공고가 올라왔으니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거절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친구가 국제개발협력에 대해서 고민했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평소에 국제개발협력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얼마나 동의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가, 그거 그냥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일 아니야? 그냥 가서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니야? 봉사활동 같은 거 아니야? 그런 오해들로 하여금 국제개발협력이 쉬운 일로 여겨지고 전문 이론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이들을 만나면 종종 질문을 받는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대학원 진학이 좋을지, 어떤 분야를 언제 어떻게 선택하는 게 좋을지, 파견을 꼭 가야 하는지 – 김칩이의 국개협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에서 다루었던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늘 이런 질문이 받을 때면 나는 하는 말이 있다. 우선 기회부터 잡으라고. 본인 스스로 아무런 경험을 쌓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궤적을 좇아가기보다는, 일단 본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는지 둘러보고 그 안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가고 좁혀가라고.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좀 더 쉬운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부정 당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학도, 취업도, 파견도 모두 중요하니까 일단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부터 잡으라고.
사실 나는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자격이나 요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성장해 온 탓이 크겠지만, 국제개발협력 업계의 지나친 학력 인플레이션이라든가, 대학원 진학 내지는 해외 파견은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라는 조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나 이론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우리가 일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겪는 배우는 모든 것들은 꼭 학교에서만, 해외 현장에서만, 국제 기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거나 ‘무엇을 선택해야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에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당연히 그 고민의 무게에는 백번 이해한다, 있는 그대로의 주어진 현실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기에도 얼마나 치열한 세상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정말로 국제개발협력을 하고 싶은지, 본인이 국제개발협력 활동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과연 이것일지, 지금의 마음에서 변치 않고 영원히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적어도 선언할 수만큼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누군가의 인생,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사회를 움직이는 국가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순간은 물론이고 그 출생의 이전부터 모든 단계 하나하나에 국제개발협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간섭’한다. 모자보건, 의료, 위생, 젠더, 교육, 소득 창출, 환경, 거버넌스 등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 없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것은 국제개발협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공으로 개발학을 선택했거나 김칩을 찾아 읽고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이것만으로도 이미 얼마나 훌륭한가?) 충분히 고민하는 사람이겠지만, 사실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는 많은 것들을 고려하게 된다. 특히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하다 보면 깜빡 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게다가 연차가 쌓여갈수록 오히려 본인의 부족함이 크게 느껴지고, 노력한 만큼은커녕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내가 뭐라고 이렇게 남의 나라 사람들 귀찮게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고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 - 공부를 더 할지, NGO로 갈지, 해외 파견을 갈지, 국제 기구를 지원할지 등의 문제는 층위만 다를 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계속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나는 이것이 유일한 국제개발협력 활동의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적으면서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남의 집 귀한 자식들 귀찮게 하고 있나?
우리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나아가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계속 걸어 나가겠다는 마음가짐. 그래도 일단 해보겠다는 요량으로 당장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일.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제개발협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