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따귀를 좌우 왕복으로 맞은 적이 있었다. 두발 단속에 대들었다는 이유였다. 왜 고등학생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질문했지만, 학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던진 질문은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저 반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따귀가 날아왔다. 이상했다. 왜 대화가 되지 않을까? 왜 설명해주지 않을까? 나는 그저 세상에 불만 많은 반항아인가?

그때의 경험은 내게 큰 질문을 남겼다.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왜 권위는 대화나 설명이 아니라 힘으로 행사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떠올랐다. 연봉은 추측에 의존해야 했고, 조직 문화는 소문으로만 들려왔다. 갈등이 생기면 책임자는 자리를 피했고, 문제를 지적하면 눈치와 비난이 돌아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진 담대한 포부가 점점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특히 젊은 구직자와 초년 활동가들은 조직에 비해 너무나 취약하다. 정보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고, 네트워크도 약하다. 구직 과정에서 이미 조직이 가진 권위와 불균형한 구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개인은 목소리를 내기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나는 혼자인데, 이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그 경험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런 불균형한 문제에 대해 대화하지 않는가?”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질문하고, 내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는 것을. 권한은 누군가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공사모:락모락은 그 다짐에서 시작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 속에 갇혀 있다. 급여, 조직 문화, 업무 강도 같은 중요한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다. 그 결과, 젊은 활동가들은 자신이 뛰어들 분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다.

리뷰 플랫폼을 기획하며 가장 큰 우려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혹시 일각의 비판처럼 ‘이 공간이 불만과 분열만을 키우는 장이 되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더 키우는 도구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많았지만,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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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고민이었다. 자신의 신원이 특정될까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운영될지 알 수 없는 초기 플랫폼에 리뷰를 남겨준 초기 모락이들의 용기 덕분에 점점 불어났다. 그냥 해보자는 마음에 호응해주는 듯 했다. 공사모:락모락은 런칭한 지 1시간 만에 100명이 가입했고, 2주 만에 회원 수는 560명을 넘어섰다. 리뷰는 260개 넘게 모였고, 리뷰가 달린 기관만 100개가 넘는다.

모락이들의 주관적인 의견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모여 커다란 객관성을 만든다. 그들은 때로는 조직의 문제를 지적하고, 때로는 긍정적인 면모를 조명한다. 이 주관적인 목소리들은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노동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이런 플랫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분야가 더 안전해진 것 같아요.” 라는 후기는 공사모:락모락의 존재가치를 말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리고 함께라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동안 나는 이 분야에서 너무 많은 동료를 떠나보냈다. 떠나는 동료를 바라보며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무력감에 여러 번 괴로워했다. 더는 그런 순간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제개발협력을 평생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도 언젠가 이 분야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이 분야에서 배운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서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떠나더라도 문제를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태도를 배워가기를, 국제개발협력이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마음이 드는 곳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용기를 준 공간으로 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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