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의 이야기다. 수요일 오후 1시 30분.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는 몸을 이끌고 예약된 강의실로 걸어간다. 적도 위의 해는 따뜻하고, 규칙적으로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최면을 걸듯 눈꺼풀이 내려오게 만든다. 강의고 뭐고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억지로 한쪽으로 밀어내고 겨우겨우 강의실에 다다라 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덮치며 노곤하던 정신을 깨운다. 누군진 몰라도 미리 에어컨을 틀어 둔 직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며 건물로 들어가는데, 이미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 두 분이 앉아계신다. 강의 시작까지 30분이나 남았으니, 이분들이 수강생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아뿔싸, 강의 들으러 오셨단다.
“안녕하세요. 이번 워크숍을 맡은 위스키입니다”
일단 태연한 척 인사하고 자리에 앉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처음 강의계획을 받았을 때 들었던 바로는 수강생들이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고 했는데, 그들과 내 젊다는 기준이 다른 건가? UN은 이제 만 65세까지 청년으로 정의한다던데 그런 의미였나? 열정이 있으면 모두 청년이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걸까? 등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래, 이분들이 조금 나이가 있으신 편이고 나머지는 젊겠지, 하며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수강생이 한두 분씩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아. 저번에 인사드린 기관장님도 계시네.
사람이 죽을 위기에 닥치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간다고 하던가. 당연히 그 정도야 아니겠지만 순간 강의 내용과 여태 준비한 과정이 정말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머릿속에 재생됐다. 과연 내가 이 주제를 제대로 아는 게 맞는지, 관련된 논문과 보고서를 뭘 읽었는지, 다른 사업에서 강의할 땐 어떻게 했고 무슨 질문이 들어왔었는지, 내가 이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졸음? 예상치 못한 기관장님의 참가는 더블샷 아메리카노보다 강력하더라. 나름 여유에 차 있던 마음에 겸손함이 가득, 강제로, 채워진다.
(더닝-크루거 효과. 우매함의 봉우리까지 가려고 해도 어느정도 지식은 필요하다)
사업을 위해 현장에 나가 이해관계자를 만나 사업 설명회를 하고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참가자가 모두 경력이 수십 년은 되신 -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많은 - 전문가였던 상황은 아마 개발협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은 겪었을 것이다. 이럴 때 참 난감하다.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아는 거 하나 없는데 앞에서 강의랍시고 하면서 더 피해만 주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냥 타이밍과 운이 좋아서 전문가 대접을 받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내세울 거라고는 그분들보다 한국말 좀 잘한다는 것밖에 없는데, 뭐가 잘났다고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들 앞에서 전문가랍시고 거들먹거릴 수 있을까. 섹터 전문가라기엔 그분들이 수십 년 더 이 분야에 종사하셨고, 지역 전문가라기엔 감히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오신 분들 앞에서 저번 주에 비행기 타고 들어온 내가 입에 담기엔 너무나 오만한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사실 해결책은 너무 간단하다. 꾸준히 현장에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내 우매함이나 무지함이 학습을 멈춤으로써 생기는 문제라면, 배움을 - 이론이건 실무건 - 멈추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나. 우매함의 봉우리를 넘고 절망의 계곡을 건너 마법의 성을 지나 지속가능성의 고원을 오를 때쯤이면 내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 다다르는 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척척석사를 넘어서 척척박사, 교수가 답인가…)
정도(正道)라는 게 다 그럴 테지만, 진짜 실천하는 게 말만큼 쉽지 않다. 이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전문성’ 이라는 게 갖춰질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거니와, 이제 10대, 20대 시절처럼 마냥 공부에만 공을 쏟을 수 있을 정도의 - 물론 당시에도 공부만 했던 건 아니지만 - 시간적, 금전적, 체력적 여유도 없다. 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친구들 만나고, 가끔 맛집도 가고, 휴식을 취할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저런 사정 다 따지면 괜히 더 뭘 벌리기보단 적당히 대접받으면서 편히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출장, 보고서 등에 지칠 때마다 슬그머니 이런 유혹이 발을 들이민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잖나. 저쪽에서 대접해 준다는데 그걸 받는 게 무어가 문제며, 어차피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다 말로 풀어낼 수 있는 건데 이 정도면 차고 넘치거니와, 솔직히 나 정도 경력이면 어디 가서 주눅들 정도는 아닌데, 이러면 전문가 대접 충분히 받고 누려도 되는 거 아닐까?
이렇게 마귀가 머리를 채울 때면 한쪽에 꿍쳐둔 그들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실체도 없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서 기업들의 돈을 받아먹는 사람, 전공 분야에서 퇴출당한 후 유사 분야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 대기업 일 년 근무 후 나와서 그 경력으로 평생을 강의하는 사람, 밑 연구원에게 모든 일은 다 시키면서 공만 쏙쏙 뽑아가는 사람. 백신으로 항체를 만들듯 그들을 반면교사로 사용한다. 그래, 저렇게 될 수는 없지. 최소한 나 자신한테 창피하지는 않아야 하니까. 그리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사업에 영향을 받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기대만큼은 해야 손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부귀영화는 몰라도 안빈낙도, 유유자적한 삶을 위해선 마음만은 편해야 하니까.
이전 에세이에도 한 번 지나가듯 썼지만, 경력이 어느 정도 되고 (나이를 먹고) 업계에서 아는 이름들이 한둘씩 생기다 보니 나름 전문가랍시고 불러주는 곳도 생기고, 멘토링을 부탁하는 사람도 공식/비공식적으로 생기고, 사업에서 내 결정을 기다리는 손과 눈도 많아졌다.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난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과 수십억의 돈이 오가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그 책임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뭐 어쩌겠냐, 아는 건 쥐뿔도 없지만 열심히 해야지. 감사하게도 불러주시는 분들과 나를 믿는 분들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양심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양심이나마 깨긋해야 아침에 거울 볼 핑계라도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