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는 절에서 보냈다. 템플스테이를 간 것인데, 14년 전에 갔던 낙산사에 또 갔다. 당시 낙산사는 강릉의 역사적인 산불로 인해 크게 소실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민둥산을 뒤덮은 까만 재와 사이사이에 심어진 앙상한 묘목이 대부분인 황량함 그 자체였다. 다행히 이제는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생태계가 회복된 모습이라 반가웠다. 이렇게 살아나려 얼마나 애썼을까.

잠시 멈추고 싶어서 1박 2일간의 짧은 격리를 선택했다. 원래는 12월 초에 예비 조사, 1월 초에 기획 조사가 연달아 있어서 차분히 두 조사와 2024년 공사모의 1년을 총정리하며 연말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엄 사태가 일어나며 계획에 크게 차질이 생겼다. 부랴부랴 규탄 성명과 연대 서명을 진행하고, 집회에 계속 나가는 등 예상치 못하게 분주한 연말이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내면의 에너지가 적잖이 소모됐다. 비판해야 하니까 비판하지만,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칭찬을 내내 하는 것도 피곤한데. 24시간 내내 피곤한 뉴스를 보고, 내 비판이 정당하더라도 비판하는 만큼 내가 비판받을 각오도 해야 하고. 정신이 계속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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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두 가지를 하고 싶어서 갔다. 디지털 디톡스와 명상. 휴대폰과 떨어져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내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하려면 무엇보다 나에게 집중한 상태여야 하는데,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서울에서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템플스테이는 꽤 성공적이었다. 참가자가 많아서 모두가 입을 다물어도 시끄러운 느낌이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해야 하는 게 명상이니까. 깊은 밤, 동해 바다를 마주하고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내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는 ‘파도 명상’이 내겐 잘 맞았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다가 한 번씩 들어오는 짠내는 명상을 맛있게 하는 조미료 같았고. 홀로 일출을 보며 지난 14년을 돌아보는 과정도 특별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미래를 고민하던 20대 중반의 청년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미래를 고민하는 30대 후반이 된 것도 참 재미있다. 사찰 여기저기의 법당을 들락거리며 절을 하는 것도 평소에 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격리 생활의 특별함을 더했다.

짧은 1박 2일이지만 그 템플스테이 자체에만 집중하고, 나의 호흡이 드나듦을 먼저 신경 쓰고, 계속해서 나의 마음 상태를 체크하고, 알아차리고, 질문하며 나를 다스리려 애쓰다 보니 이틀이 금방 지났다. 이 이틀 덕분에 바쁘고 혼란스러웠지만 나름 마음을 챙기며 2024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여태껏 해보지 못한 역할이 대량 예고된 2025년을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각오로 덤덤하게 맞이했다. 생산적인 멈춤이었다.

난 개발협력 종사자들이 생존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작금의 ‘생존형 생태계’를 바꾸고 싶다. 국제개발협력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체인지메이커니까. 오죽하면 Theory of Change도 사용하지 않나.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바쁘고 어렵기 때문에, 자신을 다스리고 챙길 수 있어야 하고, 즉 원할 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쉼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쉼의 시간 동안 심신을 돌보고, 주변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일을 통해 치열하게 얻은 경험을 자신만의 시각과 지혜로 녹여낼 여유가 필요하다. 이건 더 좋은 사업, 활동을 만드는데에 기여한다.

지금처럼 사람을 갈아 넣는 구조, 개인이 생존형으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더 나은, 더 높은 수준의, 다른 차원의, 창의적인, 기존과 다른, 협조적인, 포용적인, 통합적인, 너그러운, 긍정적인, 행복함을 충분히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렇지 못한데 이역만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꾼다? 비논리적이다.

우리는 개발협력 종사자만이 일상의 유일한 정체성이 아니다. 우리는 개발협력 종사자로도 살고, 가족의 구성원으로도 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도 살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서도 산다. 그중 어떤 것도 소외되어서는 충분히 행복하기 어렵다. 퇴근하고도 일을 생각해야 하고, 사회를 혁신한다며 포괄임금제로 노동자를 묶어버리고 매일 같은 야근을 방조하고, 혹시나 경력이 단절될까 싶어 이 계약직 자리를 사수해야 하고, 생존하기 위해 적은 급여를 털어 대학원을 가야 하고, 석사까지 했음에도 모두가 석사라서 차별점이 없다 보니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시금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그리고 이 모든 생존의 서사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져 있는 각자도생 사회. 더 나은 노동환경을 대화하고, 합의하고, 책임지는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협력국에는 Good Governance를 요구하는 아이러니 등. 작금의 개발협력 일자리는 Decent Work이라고 부를 수 없다. ILO가 제시한 Decent Work의 핵심 요소인

이 중 충분히 충족되었거나, Decent 한 수준을 향해 충분히, 전략적으로 가고 있는 요소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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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모에는 이 문제의 당사자들이 모여 있고, 우리의 연대로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 올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거다.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거다. 공론장을 활발히 열고, 논의된 이야기들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행동할거다. 누구한테 해달라고 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해야한다. 생태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국제개발협력 생태계를 변화시킬 정책을 제안하며, 협력과 연대가 실질적인 힘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노력이 언젠가 외부의 힘과 호응하길 기대하며  미리 판을 만들어놔야 한다.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는 체인지메이커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다 되진 않지만, 안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남의 문제는 해결해 주겠다면서 우리의 문제는 건드리지 못한다면, 누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을까. 2025년은 더 나아지기 위해 담대하게 상상하고, 함께 덤덤하게 행동하는 국제개발협력 생태계가 되면 좋겠다.